이제 5좌만 오르면, 드디어 100대 명산 완등의 대업을 이룬다.
점봉산, 대암산, 계방산, 울릉도 성인봉, 홍도 깃대봉.
이번 주는 점봉산/대암산을 가보려 했으나 대암산이 아프리카 돼지열병때문에 입산통제중이라
지난 번 설악산 등반시 미처 다녀오지 못한 공룡능선으로 방향을 틀었다.
제주에서 설악산 공룡능선 함 타려면 2박 3일의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김포행 11시40분 비행기 타고, 다시 동서울터미널에서 오색등산로행 15시 20분 버스에 오른다.
도착예정시간보다 1시간 이상이나 늦은 오후 8시 10경에 오색에 드디어 도착한다.
어두운 밤길, 조금 밑으로 내려오니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배가 고프니 맛있게 저녁부터 먹는다.
그리고 예약해둔 숙소로...온천모텔이라 하니 목욕물 받아 목욕 함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오전 3시 30분 기상. 등산은 4시부터
등산로로 향하는 아내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무거워 보인다.
'아 언제면 다녀 오나, 괜히 따라왔어...'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드디어 지옥의 문으로...
오색등산로는 초반부터 심한 오르막. 아내가 계속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힘들어 했다.
오래도록 산행을 쉬었으니 당연했다.
중탈을 권유했지만, 대청봉까지는 어쨌든 가보겠다고 의지를 보인다.
여명이 밝아 오면서 컨디션을 조금씩 회복해보지만 오늘 쉽지않은 산행이 될듯.
조금 순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
도와줄 방법이 없다. 그져 기다려 주는 수 밖에.
역시나 계속되는 오르막... 다들 힘겹게 오르고 있다.
설악에 오는 사람들은 보통 10시간 이상 산행이라 배낭이 무겁다. 그래서 더 힘들다.
계속 오르다보니 오색2쉼터에 다다르고
중청봉에는 운무가 드리워져 있다.
잠깐 보이는 조망은 오늘 산행을 기대하게 하는데...
이제 대청봉도 멀지 않은듯하고...
물론 설악에서 0.5km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근데 이게 뭔가요.. 정상에 다가올수록 곰탕의 기운이 스멀스멀
맞네..완벽한 진한 곰탕이네
드디어 대청봉에 도착했지만 내 머릿속은 복잡하다.
이거 공룡을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지난번 설악에 올 때,
소청에서 일몰보고 1박하기, 대청봉 인증, 그리고 공룡능선 정복까지 세가지를 한꺼번에 다 해결하려 했으나
날씨가 발목을 잡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공룡능선을 포기해야만 했었다.
그래서 오늘 설악에 온 주목적은 공룡인데...또다시 날씨가 내 발목을 잡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오늘 아내가 너무 애썼다.
어렵다고 보았는데 4시간의 악전고투 끝에 다시 대청봉에 우뚝 섰다.
지난번에 이미 했고 갈길이 구만리라 정상인증 패스하겠다는 것이 애초 생각이였으나,
공룡 오리무중 상황이고 오늘 고생한 아낼 생각해서 맘을 바꿨다. 시간 신경쓰지 말고 줄을 서자.
대청봉은 언제나 춥다. 손이 시려 아내 장갑을 빌려 꼈다.
우리가 이 사진 하나 찍으려고 택시타고, 비행기타고, 지하철타고, 시외버스타고 그리고 하루밤 대충 자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다.
날씨야 좀 좋아지면 안되겠니...
그래 오늘은 아내가 만세를 부를만 했다.
운무에 멋진 조망을 도둑맞았지만 이또한 추억아닌가.
이제 아무 생각이 없다. 걍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자.
멋진 경치가 그리우면 또 오면 된다.
중청대피소에서 오늘 고생한 아내에게 라면을 끓여준다.
지난번 소청대피소에서는 아내에게 삼겹살을 구워줬고 참 맛있게 먹었었다.
근데 라면을 대피소에서 파는줄 착각하는 바람에 라면은 먹질 못해서 이번에 벼르고 왔다.
그 맛이야 말해 뭐해. 식후 커피 한잔 또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먹고 마시다보니 1시간이 그냥 훌쩍 지나버렸다.
사실 난 등산중에 오래 쉬는 스탈이 아니다.
근데 중청에서 오래 쉰 이유는 변화무쌍한 설악 날씨, 혹시나 기다리면 상황이 호전될까하는 기대감을 가졌기 때문.
나의 기대감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소청까지 왔는데도 상황은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나의 간절한 바램과는 달리 곰탕은 더욱 진해진다.
이 상황에서 공룡 가는건 의미없지 않은가. 경치보러 왔지 체력훈련하러 온 건 아니니까.
안타깝지만 또 다음을 기약해야겠지.
체념하고 땅만 쳐다보면 내려가고 있었는데...이게 왠일인가.
들머리까지 결코 열리지 않을 것같던 조망이 드디어 조금씩 열리는 것이 아닌가.
무지개를 발견한 소년마냥 내 가슴은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정녕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나요?
이제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 상황이 어찌 전개되던 난 무조건 공룡으로 간다고.
저건 분명 공룡이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는 것이다.
공룡아 기다려라. 내 너의 등짝을 사정없이 밟아주리라.
결국 무너미고개에서 난 좌틀하여 공룡능선쪽으로 갔고,
컨디션 안좋은 아내는 우틀하여 천불동계곡쪽으로 하산한다.
이게 애당초 설악산 오면서 세웠던 나의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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