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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름

둔지오름, 돝오름, 손지오름, 용눈이오름 (2020. 12. 19)

오늘은 '구좌' 쪽에 있는 오름들을 탐방한다. '구좌'에는 좋은 오름들이 많이 몰려 있다.

제주오름의 제왕 다랑쉬오름이 바로 구좌에 위치하고 있고, 그 주변으로 고 김영갑 작가가 사랑했던 용눈이오름,

구좌에 감춰둔 보물이라 표현하고 싶은 손지오름, 그리고 지명도에서는 위 세 오름에 뒤지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오름인 둔지오름과 돝오름도 구좌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구좌'의 오름들을 이야기할 때 난 두 사람이 떠오른다.

 

한 사람은 고 신철주 전 북제주군수다.

예전 북제주군 지역의 오름들을 방문하면 제주의 돌로 만들어진 멋진 오름 표시석을 꼭 만나게 되는데,

이 오름 표시석들을 2004년 당시 신철주 군수가 오름에 대한 정보를 관광객과 주민들에게 안내하고 오름의 중요성을 널리 알린다는 취지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1980대에 우연히 제주에 왔다가 제주의 자연에 매료되어 그대로 제주에 눌러앉아 오랜 투병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에 매달렸던 고 김영갑 사진작가이다.

그 당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제주 미의 정수를 알아보았던 그는 제주의 중산간 오름을 사진에 담기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그중에서도 용눈이 오름을 무척이나 사랑했었다.

 

한마디로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제주 오름의 미래가치에 대한 선견지명을 가졌던 사람들이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번에 이 글을 쓰면서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공통점을 알게 되었다.

신철주 군수가 2005년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김영갑 작가도 2005년에 생을 마감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오늘 두 사람을 생각하며,

먼저 둔지오름과 돝오름을 오르고, 다음으로 손지오름과 용눈이 오름을,

마지막으로는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 오름을 방문할 것이다.

 

 

처음으로 구좌읍 한동리에 위치한 비교적 높은 오름인 둔지오름을 방문한다. 

역시나 신철주 군수가 만든 제주스럽고 오름에 딱 어울리는 오름표시석이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둔지'는 '평지보다 조금 높은 곳'을 이르는 제주 방언으로 오름 부근에 둔지가 많아서 둔지오름이라 불렀다고 한다.

 

 

 

둔지오름은 관광객들까지 막 찾아오는 그런 오름은 아니다.

그래서 덜 홰손되고 더 자연스러워서 입구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탐방로가 제법 가파르다. 

이런 오르는 맛이 좋은 오름을 난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계속 오르고,

 

 

 

또 오른다.

 

 

 

정상에 올라서 이 오름 둘레길로 나올 것이다.

 

 

 

정상 바로 밑 양지 바른 곳에 묘소가 있다.

 

 

 

뒤돌아 보니 행원풍력발전단지가 보인다.

 

 

 

깃발이 보이는 걸 보니 이제 다왔나 보다.

 

 

 

정상의 풍경. 오늘 날씨가 참 좋다.

 

 

 

한라산은 구름에 가려있고,

멀리 안돌오름과 밧돌오름이 어렴풋이 보인다.

 

 

 

올레 21코스에서 만나는 지미오름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올레 1코스에서 만나는 말미오름이 보인다.

지미오름 뒤로 우도가 보이고, 말미오름 뒤로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멀리 추자도까지 보인다.

 

 

 

반대편으로 내려선다.

 

 

 

다랑쉬오름과 돝오름이 보인다.

바로 밑으로 보이는 것이 바로 '둔지'인 듯하다.

역광이라 사진이 안 이쁘다.

 

 

 

오름 둘레길 쪽으로 들어선다.

 

 

 

 

 

 

 

둔지오름은 오르는 맛도 좋고, 조망도 뛰어나서 다시 방문하고 싶은 오름이다.

 

 

 

다음으로 돝오름으로 왔다. 돝오름 입구에는 이렇게 주차장이 있다.

 

 

 

 

 

 

 

 

 

 

 

오르면서 뒤돌아보면 다랑쉬오름이 멋지게 조망된다.

 

 

 

좌틀해야 정상으로 갈 수 있다.

 

 

 

 

 

 

 

정상에 다다르면 벤치들이 많고, 넓은 공터가 있어서 단체로 오면 휴식을 취하기가 좋은 오름이다.

 

 

 

우선 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 손지오름을 감상한다.

 

 

 

방금 올랐던 둔지오름도 보인다.

 

 

 

돝(또는 돗, 돛)은 제주어로 돼지를 뜻한다. 오름 모양이 돼지와 비슷하여 돝오름이라고 불렸단다.

또한 비자나무 군락지가 바로 옆에 있어 비저오름이라고 불렸다. 비저는 비자의 제주어.

 

 

 

다랑쉬 오름 뒤로 지미오름과 말미오름이 보이고, 우도까지 조망된다.

돝오름도 조망이 뛰어난 오름이다.

 

 

 

뭐니 뭐니해도 돝오름의 자랑거리는 바로 비자림의 전 구간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바로 밑에 보이는 곳이 바로 비자림이다.

 

 

 

돝오름도 다시 방문할 의향이 있는 오름이다.

나에게 둔지오름과 돝오름 중 어디가 더 좋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둔지오름이다.

조망은 돝오름이 약간 우세.  오르는 맛은 둔지오름이 많이 우세.

 

 

 

네비에 '손지오름'을 치면 바로 이곳으로 안내를 한다.

이 오름표시판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언제나 이 오름표시판 바로 뒤로 오름 입구가 있었으니까.

 

 

 

오름표시판 옆으로 이런 도로가 있다.

두리번 거리며 오름 입구를 찾으면서 앞으로 계속 걸어가게 된다.

 

 

 

하지만, 거이 1km 걸어가서 이 끝을 보고서야 오름 입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 다음 하는 행동은 낮은 포복이다.

오름 입구의 보증수표, 오름 표시석도 있었으니

저쪽으로 걸어가면 어딘가에 오름 입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러나 직접 가보면 저쪽으로 도무지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그 다음 하는 행동은 또 낮은 포복이다.

그래서 오름 표시석 쪽으로 다시 오게 된다.

이때 반드시 확인해 볼 것이 있다. 내 폰이 주머니에 있는지를.

 

난 확인해 보니 폰이 없더라.

그래서 자신을 질책했다. '바보야, 차에 폰을 두고 오면 어떻하냐'며.

차로 가면서 한가지 사실을 기억해낸다. 좀 전에 이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포복 과정에서 폰을 빠뜨렸음을 인지했다.

포복은 두번 있었다. 1분전(가까운 곳) 그리고 10분전(먼 곳).

1분 전 포복한 곳으로 갔다. 폰이 있었다. 너무나 기뻤다. 

그 기쁨이 '입구 찾아 헤맨 20분'을 기억 안나게 만들었다. 

 

 

 

차로 조금 더 내려가니 이런 곳이 나온다.

'오름표시석' 보다 더 확실한 입구 보증수표인 '오름관리단체지정안내'판이 보였다.

왜 오름표지석이 이곳에 없고, 아까 그곳에 있는지 따지고 싶지 않다.

'우진제비오름'에서 얻었던 교훈(오름은 공부 안하고 오면 개고생할 수 있다)를 망각한 내 잘못이다.

 

자 정리하면,

네비가 안내하는 오름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조금 더 내려와야 손지오름 입구를 찾을 수 있다는 거.

 

 

 

입구에 들어서면 손지오름이 좀 시시해 보일 수도 있다.

특히 나처럼 오르는 맛을 중시하는 사람을 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금새 사라질 것이다.

 

 

 

이런 곳을 제주도말로 '태역밭'이라고 한다. 

제주의 아이들은 어릴적 이런 곳에서 뛰어 놀았다. 총싸움도 하고, 축구도 하고, 말타기도 하고...

이제는 이런 태역밭을 보기가 쉽지가 않다. 여길 오르면서부터 그냥 기분이 좋았다.

저쪽에서 개구쟁이 친구들이 총들고 나올 것만 같았다.

 

 

 

잠시 뒤를 돌아보았는데 다랑쉬오름이 보인다. 

돝오름에서 본 다랑쉬오름도 좋았지만, 손지오름에서 본 다랑쉬오름과는 비할 바는 아니네.

 

 

 

조금 더 올라서서 바라본 용눈이오름.

용눈이오름을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오름은 바로 손지오름이다.

 

 

 

손지오름은 낮아서 오르는 맛은 부족할 수 있다.

탐방로도 없다. 그냥 거친 억새밭을 선답자의 발자국을 따라서 아주 불편하게 걸어야 한다.

근데 손지오름은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게 하는 오름이다. 

 

 

 

좀 전에 올랐던 둔지오름과 돝오름, 그리고 제주오름의 제왕 다랑쉬오름이 세트로 조망된다.

위풍당당한 다랑쉬오름, 이곳에서 바라보니 참으로 인상적이다.

 

 

 

3대 김밥만 있는게 아니고 억새가 아름다운 3대오름도 있나보다.

따라비오름, 큰사슴이오름 그리고 손지오름이 그렇단다.

그렇담 손지오름이 이미 유명한 오름이라는 얘긴데, 이상하게도 손지오름은 왜 이렇게 때묻지가 않았을까.

이제 탐방로도 조성되고 방문자도 많아질 것인가. 제발 안 그랬으면 좋겠다. 

 

 

 

앞의 봉우리와 뒤의 잘생긴 다랑쉬오름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여기서 나는 다시 한번 탄성을 지른다.

저 뽀쪽한 동검이오름, 그리고 높은오름이 조망되는데,

이 손지오름에서 말고 이 두 오름이 이처럼 조망되는 곳이 있는가 말이다.

높이는 보잘 것 없는 이 오름이 조망은 가히 으뜸일세.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이 풍경, 가장 제주도스러운 이 풍경.

잘 담으면 정말 작품 하나 나오겠는데 구닥다리 폰과 미천한 실력이 풍경을 망친다.

백약이오름아!  올만이다. 내 한동안 좀 소원했다.

조만간 보러가마. 그때 좌보미랑 동검이랑 높은오름도 같이 보자꾸나.

 

 

 

길이 잘 안보인다. 불편해도 좋으니 지금 이 상태가 너무 좋다.

 

 

 

이번에 가장 큰 탄성이 나온다.

김영갑 작가가 제주 오름에 시선을 뺐긴 이유가 저런 곡선미 때문 아니였을까.

정말 제주 오름만이 연출해 낼 수 있는 아름다운 선이다.

이 풍경을 보고 노래 한 귀절이 생각났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손지오름은 바로 엄마 품속같은 오름이다.

 

 

 

한라산의 손자라서 손지오름이라고 한단다. 손지는 손자의 제주방언.

이 모습을 보니 백록담이 연상되기도 한다.

 

 

 

엄마 젖가슴 뒤로 돝오름과 둔지오름이 보인다.

 

 

 

계속 멈춰서서 바라만 본다.

 

 

 

이런 멋진 오름에 지금 오롯이 나 혼자만이 서있다.

김영갑 작가가 과거에 용눈이 오름에서 이런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다시 용눈이오름을 바라보며 김영갑 작가를 떠올려 본다.

 

 

 

어머니 품처럼 아늑했던 손지오름에서 벅찬 감동을 받고 간다. 당연 다시 방문하고 싶은 오름이다.

어머니 눈에는 모든 자식이 다 이쁘게 보이는 것처럼,

손지오름에서 바라보는 모든 오름이 다 이뻐보였다.

손지오름에서의 감동을 뒤로 하고 이제 용눈이오름으로 향한다.

 

 

 

용눈이오름에서는 마스크를 쓴다.

 

 

 

용이 누워있는 모양이라서,

오름 한 가운데가 크게 패어있는 것이 용이 누웠던 자리 같다하기도 하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용의 눈처럼 보인다하여 용눈이오름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용눈이오름에 이처럼 사람이 적은 것은 바로 코로나19 상황이 엄중하다는 방증이다.

 

 

 

오늘은 소들이 안 보인다. 다들 어디 갔지. 자가격리중인가.

 

 

 

오랬만에 와보니 역시나 오름이 많이 훼손되었구나.

 

 

 

"나는 사진에 순교하기로 작정한 사람이다"

김영갑 선생은 늘 몸뚱이는 뒷전이고, 제주를 찍는 게 먼저였다고 한다.

태풍이 치면 바다로 나갔고, 낮이면 중산간 오름을 쏘다니며 마음껏 제주를 찍었다.

비가 오면 구름을 벗삼아 움직이는 모양을 담고, 맑은 날에는 꽃향기에 취해 흐느적거렸다.

바람과 풀잎, 돌과 바다는 그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였다.

 

땡전 한 푼 없이 제주에 내려온 작가는 들판을 거닐다 밭에 떨어진 당근을 씹어먹고,

라면이 떨어지면 냉수 한 사발로 배를 채우면서 제주와 사랑에 빠졌다.

끼니는 걸러도 인화지와 필름 없이 살 수는 없었다.

한 컷 셔터를 누루지 않으면 라면 한끼가 보장되지만, 그는 지체없이 셔터를 눌러었다.

밥을 굶어가면서 20만장의 필름으로 사진과 함께 했던 그는, 정작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됐을 때 절망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영혼을 담아 찍은 사진들이 창고에서 방치되고 있다가

2001년 겨울에 버려진 삼달국민학교를 구해서 

2002년 여름, 지금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개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2년이였구나.  나도 2002년에 사무실을 오픈했는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관을 준비하던 중 선생은 본인의 몸에 이상이 온 것을 알게되고,

그후 병원에서 루게릭병 진단을 받게 된다.

결국 2005년 4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두모악 마당에 그의 뼈가루가 뿌려지게 된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올레 3코스를 걷다보면 만나게 된다.

 

 

 

인체의 곡선처럼 부드럽고 고운 능선이 유독 아름다운 용눈이오름은

경사가 급하지 않아 오르기가 편하고 조망 또한 뛰어날 뿐만 아니라

용눈이 오름을 무척 사랑했던 김영갑 선생 스토리까지 더해 지면서

관광객들에게 너무나 인기있는 오름이 되어 버렸다.

 

 

 

 

 

 

 

손지오름을 바라보니 좀 전의 깊은 감동이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삶에 지치고 여유없는 일상에 쫓기듯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서 와서 느끼라고,

이제까지의 모든 삿된 욕망과 껍데기뿐인 허울은 벗어 던지라고.

두 눈 크게 뜨지 않으면 놓쳐버릴 삽시간의 환상에 빠져 보라고 손짓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주의 진정성을 제주의 진짜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넉넉한 마음입니다.

그것이면 족합니다 "      - 글 김영갑 -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다보니 오름이 크게 훼손된 관계로

조만간 '자연휴식년제'가 적용되어 아마도 탐방하기 어려울 듯하다.

 

 

 

 

 

 

 

좌측으로 보이는 오름은 은월봉이고, 그 뒤로 두산봉(말미오름), 그 뒤로 우도가 보인다.

우측으로 보이는 오름은 대왕산이고 그 뒤로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이 모습을 보니 그냥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