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어린이날 다녀온 올레1코스, 그동안 공사가 다망하여 이제야 올린다.
2007년 7월에 성산일출봉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고,
2개월 후 2007년 9월에 드디어 제주 올레길 1코스가 이 세상에 탄생하게 된다.
탄생의 주역, 서명숙 이사장이 서귀포 출신이고, 현재 올레 사령부도 서귀포에 있고,
가장 인기있는 7코스도 주무대가 서귀포인지라 여러모로 현재 7코스를 1코스로 개척했었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성산일출봉의 상징성,
그리고 과거 신임 제주 목사의 탐라 순력시 시흥에서 처음 출발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참작하여
현재의 '시흥-광치기해변'을 1코스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암튼 1코스 개척은 여러모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첫 코스라 경험도 전무했고, 올레에 대한 주변의 냉소적 반응도 많았을 것이고,
특히 마을이나 사유지 통과를 위해 이장과 청년회 등 주민들을 설득하는 작업은 난제중의 난제였을 것이다.
서귀포의 '모범생'이였던 서이사장 곁에 서귀포 '땅벌파' 두목 출신 남동생이 없었다면
어쩌면 그 난제를 풀지 못해서 서이사장의 원대한 포부가 좌절되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초대 탐사대장 서동철은 올레1코스 개척시 무려 47차례나 마을을 찾아가 술을 사먹이며 설득을 했었다고 한다.
생전에 서 대장은
'올레를 만들면서 내 개인 돈 몇 억이 들어가신디....그래도 올레가 제주 역사를 바꾸었으니까 하나도 아까울 게 없어요'
라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서 대장은 가파도에서 길을 내다 가장 심하게 반대했던 가파도 해녀와 재혼하여 가파도에서 쭈욱 투병생활을 하다
작년 1월 14일에 생을 마감했다.
1코스는 시흥초등학교 바로 옆에서 시작한다.
시작점에서 말미오름 입구까지 가는 길이 제주 올레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제주올레 첫인상이 될 수 있는데
아마도 모두들 첫인상에 흡족해하지 않을까.
말미오름은 동사면에서 남사면에 이르는 화구륜(분화구의 바깥 둘레부분)은 침식되어 절벽을 이루는데,
걸어가면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말미오름 입구 옆에 제주올레안내소가 있다. 패스포트를 미처 구입하지 못한 분들은 이곳에서 구매하면 된다.
말미오름 입구.
오름에 산악자전거를 타고 오르는 분들이 제법 있다. 이건 반칙이다.
오름은 지반이 약한 곳이 많아서 산악자전거를 타고 격렬하게 오르고 내리면 쉽게 훼손되고 복구가 잘되지 않는다.
말미오름의 다른 이름은 두산봉.
땅 끝에 위치한다고 하여 말미오름, 동물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두산봉이라고 불리웠다고.
말미오름은 얕은 바닷속에서의 화산분출활동에 의해 응회한의 퇴적층이 형성된 후에 퇴적층 자체의 성장과 함께
융기활동에 의해 화산체의 환경이 수중에서 육상으로 변하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 응회한으로 된 수중분화구 내부에 이차적으로 생성된 화구구인 분석구를 갖고 있는 전형적인 이중 화산체인 것이다.
올라서서 한라산쪽을 바라본 모습.
멀리 희미하게 한라산이 보이고 많은 오름들이 조망되고 있다.
수산풍력단지 발전기 주변으로 얼마전에 다녀온 낭끼오름, 후곡악, 궁대악, 돌미오름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좌보미, 백약이, 동검은이, 용눈이도 찾을 수 있고, 맨 앞에는 은다리오름이 서있다.
대왕산과 소왕산도 보인다.
말미오름은 비고가 101m로 너무 낮지도 너무 높지도 않은 평균적인 오름이다.
정상 전망대에는 역시나 풍경을 만끽하고 있는 올레꾼들이 있었다.
전망대에 서서 먼저 일출봉을 알현한다.
처음 올레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이 풍경에 압도당할 것이다.
제주 밭들이 만들어내는, 생전 처음 보는 풍경에 탄성을 지를 것이다.
일출봉의 위세에 눌린 식산봉은 아마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다음은 아마도 우도에 눈길이 가지 않을까.
물소가 머리를 내밀고 누워있는 형상이라 우도로 불리웠다지만, 말미오름 정상에서 보면 꼭 올챙이처럼 보인다.
이 모습이 아마도 올레1코스의 시그니쳐 풍경이 아닐까 싶다.
아니 어쩌면 제주올레를 상징하는 사진 한장를 픽하라면 이 사진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말미오름에서 내려서서 알오름 가는 길에 이런 연못이 하나 있다.
한 부부가 사이좋게 알오름을 오르고 있다.
2016년 처음 이곳을 오르면서 뒤돌아 보았을 땐 저 오름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근데 이제는 하나 하나 다 내 눈에 쏘옥 들어온다. 마치 자식 운동회에서 내 자식만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입구를 찾느라 고생했던 은다리오름이 바로 앞에 보이고,
좌보미, 백약이, 동검은이, 높은오름, 아끈다랑쉬, 다랑쉬, 돝오름, 둔지오름 다 자식같은 오름이 되어 버렸다.
알오름 정상의 모습.
말미오름이 알처럼 감싸서 품고 있는 알오름은 비고가 51m이다.
정상에서 다시 한라산쪽을 바라본다. 희미하지만 한라산이 보인다.
다랑쉬오름은 역시나 우람하여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올레21코스에서 오르게 되는 지미봉이 멋있게 조망되고 있다.
레드카펫보다 더 좋은 그린카펫.
제주올레가 아무 조건없이 주는 큰 영광이다.
이제 종달리에 들어선다.
예전에는 시흥과 종달, 대단한 앙숙이였다고 한다. 서로 결혼도 안시킬 만큼.
그래서 올레길 개척시 주민 설득을 할 적에도 더욱 힘들었다고 한다.
시흥초등학교 모습.
종달마을 팽나무.
낭그늘 아래서 동네 할머니들이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육지에서 제주 팽나무를 조경수로 많이 쓰고 있다보니 흔하던 팽나무가 이젠 귀하신 몸이 되었다.
마을 다니다 보면 '팽나무 삽니다'는 광고판을 많이 보게 된다.
제주에서는 '소금하면 종달, 종달하면 소금'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 한 때는 종달리민을 소금바치, 또는 소금쟁이라
불려지기도 했을 정도다.
1900년대초 종달리 마을 353호 가운데 160명이 소금 생산에 종사했고, 소금을 생산하는 가마도 46개나 있었다고 한다.
종달 천연염에서 생산한 소금은 조정에 진상은 물론 전라도 지역까지 보내졌을 정도로 품질이 뛰어났나고 한다.
종달염전은 해방 후부터 육지부 천일염이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수지를 맞추지 못해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에 따라 지금은 염전지가 수답으로 바뀌었으며, 염전 터를 수답으로 바꾸는 공사는 1957년부터 시작되어 1969년에야
32ha의 옥토가 만들어졌다.
이 사업은 제주의 간척지 사업으로 성공된 첫 사례이며, 현장에는 당시 도지사 '구자춘'과 북제주군수 '김인화'에
대한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이제 종달 해안도로를 따라서 오조리를 향하게 된다.
바닷물이 많이 빠졌다.
이쯤에서 한치 하나 구워서 맥주 한잔하며 좀 쉬어가도 좋다.
좀 전에 올랐던 말미오름과 알오름이 보인다.
목화휴게소 옆에 중간 스탬프가 있다.
어린이날 놀이공원 대신 이렇게 자연에서 노는 것도 좋다.
오늘도 어김없이 올레꾼들이 많이 보인다.
송난포구의 전경.
송나라 때 오랑캐의 칩입을 받아 송난이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다.
식산봉 앞 오조리 조개체험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조개 잡기에 여념이 없다.
입장료는 무료이다.
이제 성산일출봉이 멀지 않았다.
성산부두의 모습. 멀리 지미봉이 보인다.
제주의 보물, 성산일출봉님이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성산일출봉 우뭇개 해안의 모습.
성산은 언제가 공사중인 곳이 많다.
성산일출봉 근처에 있는 많은 식당들이 코로나로 매출이 많이 줄었다.
올레코스에는 성산일출봉을 오르게 하지는 않는다.
난 도민이라 입장료도 없으니 온 김에 함 올라줘야지.
올라서니 역시 멋진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정상 모습 1.
정상 모습 2
정상에서 내려서며 바라본 광치기 해변의 모습.
조금 더 내려서서 바라본 모습.
관광객들은 저기 보이는 해녀의 집에서 해산물에 한라산 소주 한잔하고,
보트를 함 타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게 된다.
해변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외국인 부부. 암튼 외국인들은 여유로워.
한국인들은 뭘 찍고 있거나 뭘 먹고 있을텐데...
광치기 해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광치기 해변에는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추억을 쌓고 있었다.
오늘도 날씨가 좋아서 행복한 올레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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