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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

올레16코스 (2021. 04. 25)

올레 16코스는 '애월'이 주 무대이다.

애월은 제주시 읍면 가운데 가장 넓다.

소길리에 거주했던 이효리 때문에 '애월'은 너무나 유명해져 이제 전국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16코스는 먼저 애월 고내포구에서 시작하여 구엄어촌체험마을까지 대략 5km 애월 해안도로를 걷게 된다.

신엄, 중엄, 구엄 이 세 마을을 거치게 되는데, 멋진 애월 바다의 진수를 볼 수 있다.

이 구간에서는 편의점도 쉽게 만날 수 있고, 식당들도 많다.

이후 이어지는 10km 이상의 내륙구간은 편의점, 식당 일절 없고, 해안 구간에 비해 좀 지루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수산봉과 수산저수지,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보리밭 들은 

그 지루함에 대한 보상으로 부족하지 않다.

시작점 고내포구의 모습.

 

 

 

 

 

 

 

 

 

이런 길을 걸으면서 멋진 애월 바당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16코스의 매력이다.

 

 

 

 

애월 해안길에는 정말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숙박시설, 카페, 음식점 등등.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드라이브 코스로도 인기이지만, 걸으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신엄포구.

 

 

 

 

 

 

 

 

 

 

 

 

 

 

걷기 편하게끔 잡풀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멀리 한국가스공사 제주애월기지가 보인다.

 

 

 

 

 

 

 

 

 

 

 

 

 

 

20-30분만 차를 타고 나오면 언제든 볼 수 있느니

이런 환상적인 풍경에 둔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100대 명산을 다니면서 육지의 호수나 강을 만날 때면 난 깊은 감동에 빠지게 된다.

제주에서 쉬이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사진을 정말 많이 찍게 된다.

 

 

 

 

바다를 쉽게 접할 수 없는 관광객들이 제주의 멋진 바다를 만나면

제주도민들보다는 훨씬 큰 감동을 받을 것임은 같은 이치다.

 

예전에 제주 택시 기사분이 위미 동백군락지에 사람들이 몰려 드는 것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던데 난 충분히 그들이 이해되었다.

나도 육지 나가면 그 흔한 사과나무에 열광하곤 하니까...

 

 

 

 

그래서 제주 바다는 아마도 제주의 제일 귀중한 관광자원이 아닐까.

제주의 해안 절경이 없었다면 '제주올레'도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조사님들은 올레꾼에게 언제나 좋은 모델이 되어 준다.

 

 

 

 

제주 해안에 있는 현무암들은 아아용암이라 표면이 상당히 거칠어서 쉽게 다가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구엄 해안에는 평탄한 지형이 유독 많아서 과거에는 돌 염전이 발달했을 정도다.

마을 포구 서쪽 쉐머리코지에서 구엄마을과 중엄마을의 경계지점인 옷여까지가 평평한 암반지대를 이루는데

이 암반지대가 소금밭이였다.

겨울을 제외한 봄,여름,가을 소금생산이 가능했다.

겨울에는 일조량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계절풍의 영향으로 파도가 드세어 소금밭을 쓸어버렸다고.

 

소금밭은 일정 양 개인소유가 인정되어 매매가 이루어지기도 했단다.

육지의 밭에 비하여 가격도 훨씬 높았다고.

한 가구당 20-30평 내외로 소유하였고 상속도 가능하여 큰 딸에만 상속해주는 풍속도 있었단다.

 

 

 

 

현재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되어 버렸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석양이 매우 아름답다고 한다.

해질녘 즈음이 되면 웨딩 촬영을 하는 팀들이 많이 몰려든다.

 

 

 

 

 

 

 

 

 

1559년(명종 14년) 제주목사 강려가 부임하면서 구엄리 주민들에게 소금을 생산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바위 위에 찰흙으로 둑을 쌓고 그곳에 고인 바닷물이 햇볕에 마르면서 생기는 소금을 얻어내는 방식으로 

약 390여 년 동안 구엄마을 주민들의 주요 생업의 터전이자 삶의 근간이 되어왔던 곳이다.

품질이 뛰어난 천일염이 생산되어오다가 해방 이후 폐기되어 지금은 소금 생산을 하지 않고 있지만

2009년에 제주시가 예산을 투입하여 돌염전을 일부 복원하고 관광안내센터와 주차장을 설치하였다.

 

 

 

 

구엄 돌염전의 모습.

 

 

 

 

다음 목적지는 수산봉.

이제 올레길은 내륙으로 방향을 틀게 한다.

구엄리 돌염전에서 우틀해서 들어오면 이런 모습. 제주의 전형적인 촌락의 풍경이다.

 

 

 

 

수산봉이 고개를 내밀고,

 

 

 

 

 

 

 

 

 

어느덧 수산봉 입구에 다다른다.

애월읍에도 수산리가 있지만, 성산읍에도 수산리가 있다.

16코스에서 만나는 수산봉은 애월읍 수산리에 위치해 있고, 2코스에서 만나는 대수산봉은 성산읍 수산리에 있다.

 

수산봉은 물메오름이라고도 한다. 물메의 한자어가 '수산'이다.

오름 꼭대기에 샘물이 있어서 물메오름이라고 했단다.

조선시대에 물메에 봉수를 설치하였기 때문에 수산봉(봉화 봉)이라 하다가, 봉수를 폐지하면서 수산봉(봉우리 봉)으로

한자를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수산봉은 비고 92m로 그리 높지 않은 오름이다.

 

 

 

 

수산봉 정상부의 모습.

 

 

 

 

수산봉을 내려서면 동남쪽으로 수산저수지가 나온다.

애월 수산에는 수산저수지가 있고, 성읍 수산에는 수산한못이 있다.

 

 

 

 

수산저수지 앞에 있는 이 곰솔은 천연기념물 제44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나무는 400여년전 수산리가 생길 때 한 집의 마을 뜰안에 심었으나 집이 없어진 뒤

강씨 선조가 관리하였다고 전해진다.

수산리 주민들은 이 곰솔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이라 믿고 잘 보호하여 왔으며

눈이 내려 덮히면 마치 백곰이 저수지의 물을 마시는 곰을 연상시킨다하여 곰솔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참고로 산천단 곰솔이 수산 곰솔보다 100-200년 더 오래 되었다.

 

 

 

 

수산저수지는 1959년 3월 식량 생산을 목적으로 한 농업용저수지로 속칭 '답단이내'를 막고 저수지 공사를

시작하여 1960년 12월 12일에 준공하였다고 한다.

조성 당시에는 수산저수지 남쪽 하천인 답단이네로부터 물이 유입되었으나 지금은 도로 개설로 인해

하천의 물길이 막혀 물이 유입되자 않고 있으며 도로 밑에 있는 소규모 우수관을 통해서만 물이 

흘러들고 있다고 한다.

 

 

 

 

수산저수지에서 바라본 한라산.

 

 

 

 

수산저수지에서 바라본 수산봉.

 

 

 

 

수산리에는 옥수수밭이 무지 많다.

그리고 비행기가 지나가는 곳이여서 비행기도 실컷 볼 수 있다.

 

 

 

 

 

 

 

 

 

 

 

 

 

 

지루한 길.

 

 

 

 

예원동 복지회관.

 

 

 

 

 

 

 

 

 

 

 

 

 

 

드디어 항파두리 항목유적지에 도착.

 

 

 

 

항파두리 명칭에 관해서는 여러 얘기가 분분하여 왔으나,

지금은 '항바두리'라는 고성리 일대의 고유 지명으로 보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고 하고,

'항바두리'는 지형이 마치 항아리 모양으로 생긴 것에서 기인한다고 함.

 

1271년(원종 12년) 진도가 여몽연합군에 함락되자 김통정 장군은 제주 항파두리에 진지를 마련하고,

내, 외성을 구축하게 된다.

특히 외성은 토성으로 길이가 6km에 달했고 토성위에 나무를 태운 재를 뿌려 연막전술을 폈다고 한다.

적이 나타났을 때 말꼬리에 빗자루를 매달아 달리게하면 재가 하늘로 날아올라 연막이 되었다고.

 

 

 

 

항파두리성은 매우 짧은 기간에 축성되었다고 한다.

토성을 쌓을 때 주민들이 강제 동원되었고, 이때 식량이 부족해서 자신의 인분을 먹으려고 돌아보니 남이 주워 먹었다는 등 비참하고 고통스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성안의 면적은 30만평이나 되었다고 한다. 

성에는 4대문을 설치하고, 성 안에는 대궐을 비롯하여 관아, 병사, 군기소, 후망소, 훈련장 등을 시설하였으며,

우물과 저수지도 마련했었다고 함.

 

내성 지역에서 발굴된 건물의 건축방식이 강화도 고려 궁성과 진도 용장성의 축성 기술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삼별초 내 장인집단, 즉 현재의 공병부대에 의해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사진은 항파두리 내성터의 모습.

 

 

 

 

이글을 쓰는 오늘이 4월 28일, 정말 이런 우연이....의도한 바 1도 없음.

1273년 4월 28일 여몽연합군에 의해 항파두리성이 함락된다.

그후 김통정 장군과 70여명의 부하들은 붉은오름에 들어가 최후 항전하다 그곳에서 모두 죽는다.

 

 

 

 

이제는 항파두리 항목유적지가 관광객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나름 명소가 되었다.

사진 잘 나오는 곳이 의외로 많다.

 

 

 

 

유적지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이렇게 중간 스템프 지점이 나온다.

 

 

 

 

그리고 조금만 더 들어가면 환상적인 보리밭 풍경이 펼쳐진다.

16코스에서 애월 바당도 훌륭하지만, 이곳 보리밭 풍경도 나는 무척이나 좋아한다.

 

 

 

 

에이플러스 풍광 아닌가.

내가 웨딩촬영 작가라면 이곳으로 오겠다.

 

 

 

 

이 토성길을 지나면,

 

 

 

 

다시 멋진 보리밭 풍경이 나타난다.

 

 

 

 

역시나 걷기 편하게 정리된 모습.

 

 

 

 

 

 

 

 

 

 

 

 

 

 

 

 

 

 

 

 

 

 

 

 

 

 

 

 

 

 

 

 

 

 

 

 

 

 

 

광령초등학교.

 

 

 

 

종점 광령1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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