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2코스는 성산리 광치기해변에서 출발하여 식산봉, 고성, 대수산봉, 혼인지를 지나 온평리 바닷가까지
15.6km를 걷는 올레이다.
물빛 고운 바닷길부터 잔잔한 내수면을 낀 들길, 호젖한 산길까지 색다른 매력의 길들이 이어진다.
대수산봉 정상에 서면 시흥부터 광치기 해변까지 아름다운 동부의 풍광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제주 '삼성신화'에 나오는 고,양,부 삼신인이 벽랑국에서 찾아온 세 공주를 맞이하여 혼인식을 치렀다는
혼인지도 지나게 된다.
시작점 광치기 해변은 제주어로 빌레(너럭바위)가 넓다는 뜻으로
썰물 때면 드넓은 평야와 같은 암반지대가 펼쳐진다.
그 모습이 광야와 같다고 해서 '광치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광치기 해변은 '관치기 해변'으로도 불리는데,
성산리 남쪽 300m 지점 바닷가로 예전에 고기잡이배가 돌아오지 않으면 가족들이 이곳에 와서 기다렸다고 한다.
골이 파인 독특한 모양의 바위 사이로 밀물 때 시체가 물결에 밀려와 걸리면, 물이 빠지면서 드러났고,
수습된 시신은 주민들이 관을 짜서 묻어줬던 데서 연유된 이름이라 전해진다.
썰물 때 용암 지질과 녹색 이끼가 연출하는 장관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을 자아내고,
특히 성산일출봉 옆으로 뜨는 일출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 곳이여서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는 사진 명소이기도 하다.
광치기 해변을 지나면 바로 성산 내수면 둑방길을 걷게 되는데,
성산 내수면은 조선 말기에 보를 쌓아 만든 논은 늪지대로 변했고, 새마을사업으로 조성한 8만평에 달하는
양어장 역시 거의 버려진 상태지만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준다.
오늘 올레 2코스에 동행한 두 친구가 내수면 둑방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습.
좌측의 친구는 삼형제가 똘똘 뭉쳐 자영업의 성공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는 자영업 회장님으로 나랑
최근 올레길을 자주 걸었던 고등 동창이고,
우측의 친구는 법학을 전공한 죄로 친구들의 법률적 고민이 생길 때면 큰 힘이 되어주던 생활법률 전문가로
50이 넘은 나이에 그것도 직장생활을 유지하면서 법무사 공부를 시작하여
단숨에 자격증을 취득하는 괴력을 보여주어, 동창들 사이에선 '우리보다 뇌가 15년이상 젊은 놈'이라는 평가를
받는 친구이다.
둘 다 오래도록 한 분야에 정진하여 온, 그래서 주말에는 이렇게 여유있게 올레길을 걸을 수 있는 친구들이다.
7코스에서 범섬이, 14코스에서는 비양도가 올레꾼들의 벗이 되어주는 것처럼
2코스에서는 성산일출봉이 그 역활을 해준다.
그린 그린한 태역밭을 걸을 때면 언제나 행복하다.
식산봉 주변 오조리 일대는 제주에서도 대표적인 철새도래지로 철새들이 겨울나기에 알맞은 곳이다.
매년 수백에서 수천 개체가 찾아든다.
갈매기류 오리류 백로류 아비류 논병아리류 가마우지류 도요물떼새류 등 종류도 다양하고,
저어새 큰고니 큰기러기 물수리 매 황조롱이 같은 희귀철새들도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조류독감(AI)이 발생되면 식산봉 주변은 통제되어 올레 2코스가 완전 단거리 코스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식산봉을 오르면서 바라본 성산일출봉의 모습.
식산봉은 바위오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기슭과 등성에 유독 바위가 많아서 붙은 명칭인데 외부에서 바라볼 때는 숲이 울창하여 보이지 않으나 현장에서는
확인할 수가 있단다.
식산봉의 유래는 제주의 과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왜구의 침범이 빈번했던 시대에 오조리 해안을 지키던 조방장이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이 오름을 이엉으로 덮었고,
군량미를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지혜를 발휘하였는데 이를 본 왜구들이 겁을 먹고 달아났다는 데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면 앞으로 가야할 대수산봉이 보이고.
성산일출봉이 보이고,
우도까지 보이지만 나무가 많을 것을 가려 썩 시원한 조망은 아니다.
식산봉 내려서서 바라본 성산일출봉의 모습.
오조리 마을로 들어설 수 있게 만든 나무 테크.
뒤돌아 본 식산봉의 모습.
식산봉은 비고가 55m에 불과해서 오름이라고 하기엔 좀 민망한 수준이다.
오조리에 들어서면 바로 '족지물'이 나온다.
오조리는 제주에서 네 번째로 용천수가 풍부한 마을이다.
보이는 '족지물'을 비롯해 잔모살물, 수전, 주근디물, 엉물, 샛통물, 재성물, 얼피물 등 12개의 물통이 있다고 한다.
이들 물통들은 마을의 공동재산으로 식수는 물론 빨래와 목욕 등 일상생활에 두루 사용했으며
소와 말을 먹이기도 했다고.
위 사진의 위쪽은 여자탕, 아랫쪽은 남자탕으로 구분 사용하였으며 맨 윗쪽은 채소를 씻기도 하고 음용수로 사용하였다.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 주변에 조성된 동네이름도 족지동네이다.
예전과 같이 이용이 많진 않지만 여름철 피서지로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오조리 마을로 들어서는 모습.
내수면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모습이 한 폭의 그림같다.
두 친구 다 아침을 안 먹었고, 또 이곳을 지나면 식당이 없기 때문에
조금 일찍 점심을 먹는다. 당연히 막걸리 한사발도...두 친구는 막걸리를 사랑한다.
젓갈백반을 먹었다. 큰 기대를 안했는데 맛있었다.
젓갈 들도 나름 괜찮았고, 밑반찬도 좋았고, 북어국은 너무 맛있었다.
알고보니 주인장이 전라도 사람이였다.
우리는 뽕끄랭이 점심을 먹고 대수산봉을 향하였다.
제주 동마트 우측에
이렇게 중간 스템프가 있다.
고성리 마을을 걷고 나니 드디어 대수산봉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대수산봉을 열심히 오르고 있는 친구들.
물이 있는 산이라 하여 '물뫼'라고 하였는데 과거 오름에 물이 솟아나 못을 이뤘다 하여 붙은 명칭이다.
또한 이 오름 동쪽에 있는 작은 산 체와 구분을 하면서 각각 큰 물뫼와 족은 물뫼라 하였다.
이런 연유를 토대로 한자로 대수산봉으로 표기를 했으며, 상대적으로 족은 물메를 두고 소수산봉이라 하나
실제 그곳은 물과 관련이 없다.
성산읍 고성리와 수산리, 온평리에 걸쳐있는 이 오름의 주변은 목마장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는데
고려시대 때 제주도가 방목의 최적지임을 노린 원나라의 마정에 의하여 선택이 되면서 일찍이 목양의 장소가 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정상에 봉수대가 설치되었는데 북동쪽의 성산봉수와 남서쪽의 동자봉수(신산리)와 교신을 했었다.
지금도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많은 오름들을 바라볼 수 있다.
먼저 좀 전에 올랐던 식산봉, 그리고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시원스럽게 조망되고,
시선을 약간 우측으로 돌리면 섭지코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조그만 오름이 소수산봉이다.
올레1코스에서 만나는 말미오름과 알오름,
올레21코스에서 오르게 되는 지미봉도 보인다.
대왕산이 바로 앞에 보이고,
우람한 형체의 다랑쉬오름이 단연 돋보이고 그 옆으로 에이급 오름들인 용눈이오름, 손지오름, 높은오름, 백약이오름이
보이고 있다.
좌보미오름과 영주산까지도 볼 수 있다.
그래도 주인공은 일출봉이 아닐까.
일출봉을 땡겨 본다.
이제 내려선다.
아름다운 메밀밭.
둘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고,
60을 바라보는 현재까지도 변함없는 우정을 지켜오고 있다.
둘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말많은 남자들이라는 거.
50대 후반 중년 아재들의 수다가 아줌마들에게 절대 꿀리지 않을 정도다.
멍석을 깔아주고 막걸리 몇 명 던저주면 하루 종일이라도 이야기할 태세다.
중년 아재들의 수다를 뒤에서 관람하며 사진을 찍는 재미도 쏠쏠하다.
둘이 손만 잡으면 완전 동성 연애각인데...
대수산봉을 내려서서 혼인지까지 가는 길은 이처럼 대화에 빠져들기 딱인 길이다.
오늘 이 친구들을 2코스로 안내한 이유는,
바로 혼인지 수국을 보여주기 위함이였다.
역시나 두 친구들 들어서자마자 탄성을 지른다.
파아란 잔디위에 푸르름을 뽐내고 있는 나무들 곁에서 고고히 피어있는 수국의 모습이
정말이지 너무 아름답다.
이제 철쭉은 가고, 수국의 계절이 왔다.
과연 물감으로 저런 색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수국의 계절에는 혼인지가 핫플레이스인 것 같다.
많은 관광객들이 수국을 감상하고 있었다.
색감이 어떻게 저리 이쁠 수가 있을까.
저 수국 색깔의 티셔츠에 푸른 잔디 색깔의 바지를 입으면 그야말로 패션의 완성되겠다.
중요한 것은 보는 것처럼 색감이 연해야 한다.
진하면 촌스러울 수도 있다.
이쁜 잔디가 있어서 수국이 더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그나저나 이 황홀한 곳에 우리 도민들은 왜 안 보이지. 다들 밭이강 일햄신가.
혼인지의 모습.
제주시 삼성혈에서 솟아난 고,양,부 세 신인이 동쪽나라에서 온 세 공주를 맞아들여 혼례를 올렸다는 못이다.
기록에 따르면, 아득한 옛날 세 신인은 황량한 들판에서 사냥을 하며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았는데,
하루는 자줏빛 흙으로 봉하여진 나무함이 동쪽 바닷가에 떠밀려와 이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돌함이 들어 있었다.
돌함을 열었더니 푸른 옷을 입은 세 쳐녀와 송아지, 망아지와 오곡 씨앗이 들어 있었다.
이 세 여인은 벽랑국의 공주들로, 세 신인은 나이에 따라 세 공주를 맞아 혼인지에서 목욕하고 혼례식을 올렸다고
전해진다.
그 때 나무함이 발견된 곳은 온평리 바닷가 '쾌성개'라 하며, 이것이 떠오른 곳을 '황루알'이라 하고
세 처녀가 바닷가에서 처음 디뎠다는 발자국이 바위 위에 지금도 남아 있다.
이 못은 고대인이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탈바꿈하는 과정과 씨족형성의 실마리를 말하여주는
신화상의 근거로서 흥미를 가진다.
온평 환해장성의 모습.
환해장성은 제주도 해안선 300여리에 쌓은 석성을 말한다.
고려 원종 11년(1270년) 몽고와의 굴욕적인 강화에 반대를 하는 삼별초군이 진도에 들어가 용장성을 쌓아 항거하다
함락되자 탐라로 들어가는 것을 방어하기 위하여 조정에서 영암부사 김수와 고여림 장군을 보내어 쌓은 것이 그 시초이다.
고려왕조 말까지 보수, 정비를 하면서 왜구 침입을 방어하였으며, 현재 양호하게 남아 있는 곳
10개소(온평,신산,곤흘,별도,삼양,북촌,동복,행원,한동,애월)를 제주도지정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드디어 온평포구에 도착, 올레2코스 탐방을 마무리한다.
사진은 친구가 올레 스템프를 찍고 있는 모습.
아마도 요즘 스템프 찍는 재미가 쏠쏠할 껄. 나도 그랬어.
법무사 친구는 2014년부터 올레길을 걸었으니 2016년부터 걷기 시작한 나보다 올레길 선배다.
다만, 최근에는 10km 이상을 걸은 적이 거이 없었다고.
많이 힘들었을 법도 한데 걷는 것을 보니 역시 저력이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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