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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대 명산

덕유산 육구종주 (130대명산 100좌, 2021. 10. 31)

친구의 새 핸드백을 보면 갑자기 핸드백이 사고 싶어지는 미쓰리의 심정이였을까.

평소 애독하던 블로그 주인장이 육구종주 다녀온 것을 읽고나니, 갑자기 나도 하고 싶다는 맘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함 살펴나 보자, 제주에서 육십령까지 어찌 가는 지를...

비행기편은 광주공항, 그리고 광주유스퀘어터미널에서 17시 버스를 타고 장계터미널에 내리면 되겠다.

장계에서 1박하고, 새벽 3시-4시 사이 장계터미널에서 택시로 육십령까지 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택시를 수배해보니 그 새벽에는 운행을 할 수 없단다. 빨라야 6시-7시 정도에야 가능하다고..

늦어도 새벽 4시에는 산행을 시작하지 않으면 종주산행이 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어 

육구종주가 물건너 가는 듯했으나, 마지막에 전화를 받은 여자 기사분에게서 가능하다는 대답을 듣게 된다.

그래서 금요일날 일단 가는 비행기편만 예약을 한다. 

 

토요일날 기상을 하니 컨디션이 완전 엉망, 왜냐면 최근 양압기 적응중이라 제대로운 수면을 하지 못한 여파.

침대에서 눈을 뜰 때만 하더라도 비행기표를 취소할 생각이였으나,

기상해서 정신을 차리면서는 생각을 바꿔 먹었다.

'그래, 컨디션 난조속에 완주하면 첫 종주산행이 더 빛을 발할 수 있겠네'라고...

 

오전에 결혼 피로연에 참석해 점심 단단히 먹고 오후 1시 10분 비행기에 무조건 몸을 실었다. 

새벽 3시 30분에 숙소인 하얏트모텔 앞에서 만나는 것으로 기사님과 약속을 했다.

난 3시 20분 쯔음에 나와 있었고, 기사님은 정확히 3시 28분에 차를 몰고 나타났다.

그리고는 나를 육십령에 편안하게 태워다 주었다.

설악산, 지리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입구에 도착하면 같이 동행할 산객들이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육십령에는 사람도 차량도 하나 없이 그야말로 횡했다.

급기야 기사님이 한마디 하신다.

"차가 하나도 없네. 사람도 없고...에고 이 밤중에 어떻게 혼자 산행한데...들짐승이라도 나오면..."

염장지르는 것이 아니고 걱정해주는 거죠.

 

 

 

 

 

옛날 고개가 하도 험하고 도적때들이 많아 재물과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아 산 아래 주막에서 며칠씩 묵었다가

60명 이상의 장정이 모이면 죽창과 몽둥이로 무장을 하여 무리를 지어 넘었다고 해서 육십령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던데,

제주에서 온 촌놈 하나가 혈혈단신으로 죽창은 고사하고 아내가 꼭 가지고 가라던 스틱도 마다하며

음침한 심야의 시간에 종주산행 함 해보겠다며 육십령에 서있노라니, 참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누가 가달라고 등 떠민적 없고, 안한다고 처자식 굶는 것도 아닌데 걍 니가 선택한 것이니....

샷다 마우스하고 당장 진군하라!

 

 

 

 

 

입구에서 단 한번도 망설임이라곤 없었는데...진심 이날은 떨렸다.

나, 저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지.

 

03시 45분, 무거운 맘을 안고 종주산행을 시작한다.

아놔 ~ 굳은 결심하고 걸아가는데 왜 이리 무덤들은 많이 보이는지...

내 몸의 모든 세포가 최고조의 긴장상태, 온 놈에 힘이 들어가면서 갑자기 종아리까지 굳어지는데...

 

얼마를 걸었는지 기억도 없다. 암튼 30분도 채 걷지 않았을 것이다.

전방 멀리 불빛이 보이는 듯 싶었다. 조금 더 있으려니 웅성거림도 들렸다.

8명의 한팀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 오셨어요? 대단하시네요. 저희들이랑 함께 가시면 되겠네요"

난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의 심정이였다. 살만하니 이성 회로가 작동했다.

'아니, 얼마나 걸었다고 이렇게 쉬고 있지. 근데, 빨랑 안가나'

그렇게 생각할 즈음, 한 분이 이렇게 얘기한다.

"아, 우린 늦게 걷는 팀이라 급하시면 먼저 가도 됩니다."

으메, 언제는 같이 가자면서. 아니다, 함께 갔다가는 곤돌라 타고 내려올 각이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하며 난 떠났다.

 

 

 

 

 

또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그래도 뒤에 누군가 그것도 8명씩이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결 안정이 되었다.

 

이번에 길을 떠나면서 '제발 알바는 하지말자', 그런 생각을 했다.

종주산행에서 알바하면 엄청난 내상을 입기때문이다.

근데, 세상사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다면 인생 참 쉽지.

알바는 동행 인원수에 반비례한다. 

바위에서 크게 내려설 때부터 좀 이상했다. 그렇지만 길이 분명 보였다. 다만, 문제는 희미하다는 것.

이때 보통 사람들은 '알바'라는 인식보다는 조금 더가면 뚜렷한 길이 나올 것이라며 더 걸어가게 된다.

희미함이 사라지면 알바는 짧게 끝날 수 있지만 희미한 길은 계속된다. 왜? 누군가 알바하며 길을 다져놓았으니..

설상가상, 나처럼 성질 급한 사람은 '혹 옆에 길이 있나'하면서 알바길마져 이탈하는 경우가 있다.

이쯤되면 다시 알바길도 찾을 수 없게 되고, 또 새로운 알바길을 개척하게 된다.

어찌 그리 잘 아냐고? 많이 해봤으니까.

 

어느 지점에서 알바임을 직감했다. 그렇다고 100% 알바임을 확신하진 못했다.

그래서 당장 빽하기 보다는 뒷에 있는 든든한 일행들을 기다려 보기로 한다.

어느덧 불빛이 보이고, 말소리가 들렸다. "길이 어디야, 그쪽이야, 아니 저쪽이야"

나 있는 곳으로 오는 듯하더니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불빛은 사라지고 말소리도 희미해져 갔다.

결국, 난 빽한다. 그리고 일행 후미에 조용히 합류한다.

아...얼마나 행복하던지. 그래 사람 온기가 너무 그리웠어. 그때 적막을 깨는 한마디.

"먼저 가셨던 분 아니세요?....아, 알바하셨구나. ㅎㅎ "

 

 

 

 

 

04시 46분, 할미봉에 도착한다.

정상석이 참 거시기했다.

꼭 뒤에서 흰소복을 입은 처녀 귀신이 스윽 나타나면서 

"아저씨, 멀리 제주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하셨어"라고 반겨줄 듯 하였다.

 

 

 

 

 

이제 다음 목적지는 할미봉에서 3.6km 떨어져 있는 서봉이다.

할미봉을 지나면 초반에는 편안한 길이 제법 오래 계속된다.

 

 

 

 

 

하지만, 나중에는 길이 힘들어지고 곧 나타날 것같은 서봉은 도통 나타나질 않았다.

 

 

 

 

 

 

어둠속에서 찍어본 서봉과 남덕유산의 모습.

 

 

 

 

 

서봉에 가까워지니 조망이 터지기 시작했다.

 

 

 

 

 

 

 

 

 

 

 

 

 

 

 

 

 

 

 

 

 

 

 

육십령에서 서봉까지 7.3km이다. 

확실히 컨디션이 안 좋으니 산행이 힘들었다. 정말 서봉까지 죽을똥 살똥 올라왔다.

 

6시 38분, 서봉 정상석을 찍는 감격을 누린다.

 

전날, 장계터미널에 19시를 넘어서 도착했는데 술집만 있을뿐 저녁을 먹을 식당이 없었다.

결국, 편의점에 들어가서 사발면에 김밥 한줄 먹는 것으로 저녁을 때웠다.

저녁을 부실하게 먹은 것도 산행에 영향을 미쳤을까. 암튼 서봉까지 올라오는데 역대급으로 힘들었다.

 

 

 

 

 

 

 

 

 

 

 

 

 

 

 

 

 

서봉에서 일출을 기대했지만, 시원한 일출을 보지는 못했다.

이제 서봉을 뒤로 하고 남덕유산을 향했다.

서봉을 내려서며 하도 기운딸려서 사과를 하나 꺼내서 먹었다.

 

 

 

 

 

 

 

 

 

 

07시 18분, 남덕유산 정상에 선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남덕유산(1,507m)과 서봉(1,492m)의 높이 차이는 15m에 불과하니 산술적으로만 보면

서봉에서 남덕유산까지 가는 일이 식은 죽 먹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안 그렇다.

내려서서 다시 올라야 하니 높이차는 큰 의미가 없다.

 

육십령에서 남덕유산까지 오는데 3시간 30분이 넘게 걸렸다.

알바하고 8명 일행과 어울리느라 여러모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남덕유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봉의 모습.

 

 

 

 

 

앞으로 가야할 덕유산 능선의 모습.

저 멀리 향적봉의 모습이 보인다. 진짜 멀구나.

남덕유산 정상에서 향적봉까지는 15km가 조금 넘는다.

 

 

 

 

 

해가 제법 많이 올라왔다.

 

 

 

 

 

멀리 지리산이 보였다.

지난 주에 올랐던 반야봉이 우측으로 보이고, 지지난주에 올랐던 천왕봉은 좌측에 보이고 있다.

저 긴 능선길이 바로 지리산 종주길이다.

 

세계 3대 에피타이져가 있고, 내 고향 제주에는 3대 김밥집도 있는데

우리나라 산 3대 종주가 왜 없겠는가. 그리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로망의 대상이겠고.

저기 보이는 지리산 종주길, 그리고 설악산 서북능선을 걷는 종주길,

그리고 덕유산 육십령에서 구천동까지 대략 32km를 걷는 육구종주가 바로 3대 종주이다.

 

사실, 난 그동안 종주산행 깜이 안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지난주 지리산 산행을 끝마치고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 생기더라.

 

 

 

 

 

남덕유산은 한국의 산하 100대 명산에 속한다. 

그래서 꼭 와보고 싶었는데 겸사겸사해서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근데 얼마나 컨디션 난조속에 진행했는지가 사진속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현재의 내 몰골을 사진으로 확인하고는 이날 인물 사진을 다신 찍지 않았다.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할미봉, 그리고 그 능선을 따라 서봉까지 온 것으로 보인다.

 

 

 

 

 

이제 다음 목적지는 남덕유산에서 4.3km 떨어져 있는 삿갓재대표소이다.

그 전에 월성재를 거쳐서 삿갓봉을 올라야 한다.

 

 

 

 

 

07시 59분, 월성재를 지난다.

 

 

 

 

 

월성재를 바로 지나 뒤돌아본 서봉과 남덕유산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삿갓봉의 모습.

 

 

 

 

 

 

 

 

 

 

 

 

 

 

 

 

 

월성재에서 1.9km 지나온 지점에 삿갓봉을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여기서 그냥 지나쳐 삿갓재대피소로 바로 가도 육구종주로 인정을 해준다고 하니

삿갓봉을 패스하고 싶은 맘 굴뚝같았으나 나의 첫 종주를 좀 더 풍성하게 하고 싶어 우틀한다.

한발 한발 내딛는 것이 이렇게 힘든 적이 있었는가.

확실히 평상시와는 달랐다. 종주산행이여서가 아니라 컨디션이 최악이였기에.

근데 육구종주와 관련된 많은 블로그를 읽어본 결과,

희안하게도 다들 저조한 컨디션을 극복하고 종주를 완주했다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음...종주산행은 본래 컨디션이 저조할 때 하는 산행인가.

 

 

 

 

 

삿갓봉에 올라 걸어온 길을 바라본 풍경.

 

 

 

 

 

삿갓봉 정상에서 가야할 길을 바라보니,

아직도 향적봉은 까마득하다.

 

 

 

 

 

설천봉, 향적봉, 중봉을 땡겨 본다.

 

 

 

 

 

09시에 삿갓봉 정상석을 찍는다.

 

 

 

 

 

저 멀리 보이는 산들은 무슨 산들인고.

 

 

 

 

 

삿갓봉을 내려서서 삿갓재대피소를 향해 열심히 걷고 있었는데

뒤에서 엄청난 분이 빠른 속도로 내려오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총알처럼 나를 제끼고 지나간 사진 속의 저분은 삿갓재대피소에서 무언가를 마시면서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궁금했던 두가지 사항을 물었다.

몇시에 출발하셨는지?  6시에 출발했단다.

실례인줄 알지만, 몇살이신지? 50살이란다.

산행 복장이라기 보다는 마라톤 복장이고, 배낭 또한 너무나 슬림했다.

6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말에 내가 기겁을 하니 대회 나가는 선수들은 5시간대에 끝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내세울 것이 뭐이 있겠는가. 제주에서 혼자 왔고, 4시쯤(기죽어서 약간 뻥쳤다) 출발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내가 더 대단하다며 박수를 쳐주는데 빈말처럼 들리진 않았다.

페이스도 아주 좋다는 칭찬까지 곁들인다. 그러면서 뒤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된다는 것이다.

"지금쯤 남덕유산에 있을껄요. 아마 (종주가) 어려울 듯 싶어요."

 

 

 

 

 

그분을 배웅하고, 

난 대피소에서 약간의 떡과 삶은 계란 하나, 밀감 한쪽 그리고 남은 물을 다 마셨고, 

500ml 생수 2병을 사서 배낭에 넣었다.

 

내가 이날 배낭에 넣고 온 것은,

500ml 삼다수 2병, 백설기 떡 약간, 약과 조금, 삶은 계란 4개, 밀감 4개, 사과 2개가 전부였다.

 

 

 

 

 

뒤돌아본 삿갓봉의 모습.

 

 

 

 

 

이제 다음 목적지는 삿갓재대피소에서 2.1km 떨어져 있는 무룡산.

 

 

 

 

 

멀리 보이고 있는 무룡산의 모습.

 

 

 

 

 

무룡산을 오르는 나무 계단이 보이고 있고,

 

 

 

 

 

그 계단을 올라서며 뒤를 돌아보면 이처럼 멋진 풍경이 종주산행에 지친 산객을 위로한다.

이젠 서봉과 남덕유산이 제법 까마득하게 보였다.

 

 

 

 

 

능선길 양쪽에 보이는 풍경들.

 

 

 

 

 

 

 

 

 

 

 

10시 29분,  무룡산 정상에 도착한다.

 

 

 

 

 

무룡산 정상석.

 

 

 

 

 

무룡산 정상에서 향적봉까지는 8.4km가 남았다.

거리를 많이 좁히긴 했지만,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여전히 멀다.

 

 

 

 

 

문득, '왜 내 고향 한라산은 종주산행이란 것이 없지'라는 의문을 가져 보았다.

따져보니 한라산에는 긴 능선길이 없었다. 

종주산행길엔 긴 능선길이 필수다. 길기만 해서는 안된다. 그 능선길이 아름다워야 한다. 

한라산은 높이로는 지존이지만,

면적은 153제곱킬로미터(제주도 면적의 8.3%)로 3대 종주지인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에 비해 작다.

한라산과 비교하여 지리산은 2.9배, 설악산은 2.6배, 덕유산은 1.5배나 된다.

 

 

 

 

 

이제 다음 목적지는 무룡산에서 4.2km 떨어져 있는 동업령.

거리는 멀지만 그래도 길은 가장 편안한 길이다. 

 

 

 

 

 

뒤돌아 본 무룡산의 모습. 

사진에서도 내려서는 길이 완만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육구종주,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등력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참고로 보통 산악회를 통해 육구종주를 하면 14시간을 준다고 한다.

전적인 나의 뇌피셜로는,

14시간의 플러스 마이너스 1시간, 즉 13시에서 15시 사이가 보통이고,

12시간대 이내로 들어오면 상급 수준, 15시간대를 넘어서면 즐기면서 걸었다고 볼 수 있다.

 

완주만 하면 그만이지 시간이 뭐 대수롭냐고 할 수 있지만,

종주산행에 나서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시간에 연연하는 것같다.

 

 

 

 

 

11시 09분,  칠이남쪽대기봉을 통과한다.

 

 

 

 

 

 

 

 

 

 

 

그나저나 오늘 날씨가 너무 좋다. 뭉게구름이 너무나 이뻤다.

컨디션 난조에도 종주산행을 강행한 것은 날씨도 한몫했다.

 

 

 

 

 

 

 

 

 

 

 

 

 

 

 

 

 

 

 

 

 

 

11시 45분, 동업령에 도착한다.

여기서 잠시 쉬면서 약간의 요기를 하고 간다.

 

 

 

 

 

무룡산에서 동업령까지는 비교적 순한 길이였지만, 동업령에서 백암봉가는 2.2km의 길은

어렵게 다가오는 길이다.

초반 구간의 서봉처럼 나올 듯하면 쉽게 나오지 않은 봉우리가 바로 백암봉이다.

 

 

 

 

 

지칠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이 길을 올라서는 일은 큰 인내를 요구한다.

 

 

 

 

 

가뿐 쉼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면 

지리산의 연하선경 비슷한 풍경이 종주꾼의 굵은 땀방울을 식혀 준다.

 

 

 

 

 

이제는 백암봉 정상이겠지 소망해보지만 다시 계단이 불쑥 나타난다.

 

 

 

 

 

 

 

 

 

 

 

 

 

 

 

 

 

12시 42분, 가뿐 숨을 토해내며 백암봉 정상에 다다른다.

백암봉 정상에 서니, 까마득하기만 했던 중봉이 어느새 성큼 앞으로 다가와 있음을 느낀다.

그래, 이제 향적봉이 멀지 않았구나.

 

 

 

 

 

중봉을 오르는 길, 어찌 아니 힘들 수가 있겠냐만은,

'이렇게 길고도 아름다운 오르막길이 또 있을까'싶은 생각에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하게 다가왔고,

너무나 가슴이 벅차오르며 왠지모를 행복감이 크게 밀려왔다.

 

행복하고 감사하는 맘으로 저 길을 쉬지 않고 올랐다.

 

 

 

 

 

 

 

 

 

 

좀 전에 올랐던 백암봉이 조망되고 있다.

 

 

 

 

 

2020년 5월 마지막 날,

100대명산을 위해 덕유산을 찾아 향적봉을 거쳐 중봉에 올라 그저 감탄하며 바라만 보았던 저 덕유평전을,

2021년 10월 마지막 날, 드디어 내가 걸었다는 사실에 다시 가슴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작년 5월에는 올라온 길 오른쪽 편, 오수자 굴 가는 방향으로 하산을 하였었다.

 

 

 

 

 

덕유평전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남덕유산에서 향적봉을 바라볼 때 그랬던 것처럼, 중봉에서 남덕유산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까마득하구나.

참으로 멀리 걸어왔구나...실감 지대로다.

 

 

 

 

 

까마득했던 향적봉이...이제는...손에 잡힐 듯하다는 현실이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사람들이 잠도 제대로 못자고, 먹지도 제대로 못하면서, 최악의 컨디션 속에서

왜 그리 종주산행에 나서는 지....나는 오늘 100%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가슴 떨리는 감동과 희열,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시간의 고통을 감내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돈으로는 살 수 없고 오직 땀으로만 얻을 수 있다.

 

 

 

 

 

 

 

 

 

 

 

향적봉 0.3km, 이게 정녕 실화더냐.

오늘 육십령에서 남덕유산 정상을 오르는 것이 한라산 정상을 오르는 정도의 느낌이였다.

그 후 장장 14.5km를, 그것도 평지가 아닌 오르막 내리막 길을 걸어와서 '향적봉 0.3km'의 표시판를 

마주하니 "정녕 아름다운 오후입니다"라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향적봉이 지척이라 바로 올라서고 싶지만,

종주산행은 현재도 진행형이므로 향적봉대피소로 가서 중간 급유를 하기로 한다.

물도 거이 떨어져 생수 2병을 더 구입해야 하고, 향적봉대피소는 특별히 커피를 판다고 하니

커피도 한잔 마셔야 겠다. 

아름다운 오후에 커피 한잔해야지 않겠는가.

 

 

 

 

 

꿀맛의 커피를 곁들여서 요기를 좀 하고 향적봉에 올랐다.

 

 

 

 

 

향적봉의 모습.

 

 

 

 

 

작년에 인증을 했으니 오늘은 정상석만 찍고 설천봉으로 향한다.

 

 

 

 

 

설천봉을 향하면서 바라본 향적봉의 모습.

 

곤돌라를 타고 올라온 많은 사람들이 향적봉을 오르고 있었다.

 

 

 

 

작년 산행때 설천봉을 들리지 못해서, 이번에는 설천봉의 이 모습을 꼭 찍고 싶었다.

 

 

 

 

 

언젠가 겨울에 꼭 함 와야겠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 칠봉을 향한다. 

세어보니 지금까지 11개의 봉우리를 올랐다. 칠봉은 12번째 봉우리다.

칠봉은 설천봉에서 2.9km 떨어져 있다.

 

 

 

 

 

칠봉의 모습이 보이고 있고, 저기 뚜렷하게 나있는 길을 따라서 내려가면 입구가 나온다.

 

 

 

 

 

 

 

 

 

 

 

저기 입구가 보인다. 

설천봉에서 저 입구까지 제법 먼거리였다. 

다른 블로그에서 볼 적에는 가깝게 느껴져서 내려 오면서 자꾸 의심을 했다. 또 내가 알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이 표시판을 보자 안도하게 되고,

 

 

 

 

 

칠봉 정상에는 정상석은 없고, 이렇게 표시판만 있다.

이제 인월담까지는 2.2km 남았다.

 

 

 

 

 

인월담이 2km 남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 표시판부터 대략 1km까지의 길이 매우 험준하고 가팔랐다.

 

 

 

 

 

피날레를 목전에 둔 지점이라 자칫 방심하기 쉬울 수도 있는데 정말 정신 바싹 차려야 한다.

나도 내려오면서 어찌나 신경을 썼던지 오르막 오를 때보다 땀이 더 많이 났다.

 

 

 

 

 

인월담에 다다르자 이쁜 단풍들이 나의 첫 종주산행을 축하해 주는 듯 하였다.

 

 

 

 

 

올해 보는 단풍 중에 제일 이뻤다.

 

 

 

 

 

산행을 시작한 지 정확히 12시간만인 15시 45분에,

드디어 덕유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에 도착한다.

작년 산행때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완공되어 탐방안내소가 이쁘게 단장되어 있었다.

 

 

 

 

 

 

 

 

 

 

 

 

 

 

 

 

 

 

 

 

 

 

 

상가를 지나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서 너무나 황홀한 단풍을 볼 수 있었다.

 

 

 

 

 

조각구름과 아름다운 단풍.

 

 

 

 

 

 

 

 

 

 

 

 

 

 

 

 

 

육십령에서 03시 45분에 산행을 시작하여, 12시간 20분만인 16시 05분에 구천동주차장에 도착함으로써,

역사적인 나의 첫 종주산행 육구종주에 마침표를 찍었다.

여러모로 힘든 산행이였고, 나의 산행 이력에 최초의 30km 넘는 산행이였고, 너무나 행복하고 가슴벅찬 산행이였다.

육구종주 마침 소감은? 육구를 발판삼아 3대종주를 완성하자는 생각...

무탈 산행에 감사하고, 내 다리 특히 무릅 완전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