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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름

산세미오름 (2023. 03. 12)

산록서로를 타고 노꼬메방향으로 가다보면 왼쪽으로 오름 하나가 보인다.

바로 산세미오름이다.

 

큰노꼬메 능선에서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족은노꼬메 뒤로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오름이 산세미오름인데 그동안 미답지였다.

 

 

 

 

 

 

족은노꼬메 정상 부근에서 요런 모습의 산세미오름을 담을 수 있다.

 

산세미오름,

제주 오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름만 봐도

이 오름 근처에 '샘'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렇다.

이 오름 북동쪽 기슭에 못이 있다.

동쪽에  '수산한못'이 있다면, 서쪽에는 '김수못'이 있다.

수산한못은 인공의 못이지만, 김수못은 천연의 못이다.

그런데,

못 앞에 뜬금없이 서있는 비석 하나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비석에는 '고려충신 김수장군 유적비'라고 적혀 있다.

그렇담, '김수못'의 김수가 바로 고려충신 김수장군이라는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김수장군은 과연 누구이고, 왜 이곳에 유적비가 있는 것일까?

 

'난'이냐 '항쟁'이냐...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난'으로 본다.

장군 배중손은 삼별초 해산령과 개경환도를 거부하고 1270년 6월에 '삼별초의 난'을 일으킨다. 

삼별초가 처음 제주에 입도한 때는 진도정부 함락(1271년 5월 15일) 전인 10월 말경이였다.

김통정 등은 진도에서 항쟁을 주도하면서, 이문경 부대로 하여금 제주에 들어가 항쟁의 거점을 마련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진도 용장성이 무너졌을 경우 제주로 옮겨 계속 항전할 것이라는 것을 간파한 고려 개경정부는

삼별초 입도전 1270년 9월 경에 병력을 제주로 파견하여 삼별초가 제주에 상륙하는 것을 방어하도록 조치를 취한다.

이때, 안찰사 권담의 명을 받아 200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제주에 들어왔던 지휘관이 바로 

'영암부사 김수'였던 것이다. 뒤이어 고여림 장군이 병사 70명을 이끌로 김수와 합류를 하게 되고.....

 

기록에 의하면,

이문경 부대와 김수·고여림이 이끄는 고려 관군이 송담천(현재 오현고등학교 옆에 있는 하천) 전투에서 격전을

벌이게 되고,

이 전투에서 김수·고여림은 전사하고, 관군 1000명이 전멸하게 된다.

 

 

 

 

 

김수못에서 오름 쪽으로 좀 더 올라가면

고려말에서 조선초기의 방형석곽묘 양식의 묘 하나가 나타나는데....

이 묘가 김수의 묘로 전해지고 있다.

김수못 앞에 뜬금없이 보였던 비석에 대한 의문이 이 묘의 존재로 풀리게 된다.

 

그렇지만, 또다른 의문이 꼬리를 문다.

김수가 송담천 전투에서 전사를 했다면,

무덤이 사라봉이나 별도봉 쯤에 있어야지 왜 하필 이곳에 있어야 하는가?

 

 

 

 

 

김수의 부대가 진을 쳤던 곳이라 하여 '김수못'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김수와 고여림이 제주에 도착하여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일이

주로 화북, 조천 부근에 삼별초 제주상륙을 방어할 '환해장성'을 쌓는 것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 진을 쳤다?  선뜻 이해가 되질 않는 대목이다.

 

고여림은 송담천 전투에서 전사한 것이 분명하지만,

김수는 고려사에는 송담천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나오지만,

고씨세보에는 금덕전투에서 전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문경 부대가 제주로 상륙한 지점이 명월포(지금의 한림)였고,

이에 김수 장군 등은 이를 막고자 출전하였으나 전세가 불리하여 대촌(지금의 제주시)으로 후퇴하였다는

기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명월포에서 동진하는 삼별초를 방어하려 했다면

김수 부대가 산세미오름 기슭에 진을 쳤다는 스토리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더불어 산세미오름 근처에서 삼별초와의 전투까지 벌어졌다면 가능성은 더 더욱 높아진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금덕은 바로 애월읍 유수암리를 가르킨다. 산세미오름 바로 근처이다.

 

고씨세보에 굳이 아닌 사실을 기록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고,

고씨세보의 기록을 따르면 나의 모든 의문점이 한방에 풀리게 되니

김수는 금덕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산세미오름을 탐방하려면 

산록서로를 타고 동쪽으로 가다가 '한라대 승마장' 표시판이 나오는 곳에서 좌틀하여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면 된다.

 

 

 

 

 

승마장 표시판 바로 우측에 산세미오름 표시판이 있다.

산세미는 살아있는 샘이라는 의미, 

북동쪽 기슭 아래에 천연의 못이 있고, 그 못의 물이 마르지 않고 계속 솟아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름 표시판 입구에서 들어서면 이런 풍경.

 

 

 

 

 

조금 더 올라서면 숲속으로 진입하게 되고,

역시나 반가운 초록색 리본....저 리본을 단 분은 분명 제주 오름의 고수일 것이다.

어디를 가든 저 리본을 볼 수 있는데, 보면 걍 맘이 편안해진다.

 

 

 

 

 

가다보면 큰 임도가 나타난다.

그 임도를 계속 따라가면 되는데....

 

 

 

 

 

 

난 또 이상한 길로 들어서서 고생을 자초한다.

이쯤에서 노루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처음 듣는 사람들은 큰 공포감에 휩싸일지도 모른다. 꼭 늑대 울음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희미한 길을 따라 무작정 올라간다.

 

 

 

 

 

정상처럼 보이는 곳에 묘가 있었다.

하지만, 삼각점이 없네. 그럼 정상이 아니라는 얘기.

 

 

 

 

 

리본이 있어 더 가보았지만, 막은창....

다시 빽해서 계속 걸어가니

 

 

 

 

 

편백나무 숲이 나타났고,

 

 

 

 

 

조금 더 가니 드디어 삼각점이 나타났다.

 

 

 

 

 

정상의 모습. 정상에서의 조망은 꽝이다.

산세미오름의 비고는 102m.

 

 

 

 

 

정상 부근에 노란 리본이 달린 구멍이 보였고,

 

 

 

 

 

그곳으로 내려서니 다시 묘지가 나왔다.

딱봐도 오래된 묘다.

 

 

 

 

산세미오름은 정해진 탐방로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걍 선답자들이 남겨본 흔적을 따라 눈치껏 올라야 한다.

알바할 가능성이 많지만, 크게 고생할 정도는 아니다.

 

 

 

 

 

요런 길도 보이고....

 

 

 

 

 

선답자 블로그를 보니 분홍노루귀가 많다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볼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변산바람꽃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이 오름은 특이하게 하단부에 산불감시초소가 있었다.

 

 

 

 

 

묘들이 참 많이 보였다.

이쯤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니 전날 예보와는 딴판으로 날씨가 화창해서

산세미, 천아, 족은노꼬메, 안천이, 검을들먹, 다래북동쪽을 다녀 오려고 김밥까지 싸고 왔는데

역시나 일기예보가 옳았다.

 

 

 

 

 

차분히 바라보니

진을 치기에는 안성마춤인 곳으로 보였다.

 

 

 

 

 

김수못의 모습.

 

사실 산세미오름은 조망도 전혀 없고...그냥저냥한 오름이다.

그렇지만, 오름에 관련된 이야기거리는 매우 풍성한 오름이다.

 

 

 

 

 

역사의 소용돌이속에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타지에서 목숨을 잃었던 김수장군을

생각하며 천천히 오름 산행을 마쳤다.

담략이 뛰어났다고 알려진 김수장군은

제주 선발에 뽑히자마자 집에도 들리지 않고 바로 제주로 떠났다고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사실,

그의 부인 고씨는 무려 101살까지 장수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