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준(1913-1974) 은 구좌읍 하도리 출신으로 양묘업을 하다가 1959년 제주도의회 의장을 지냈던 분이다.
의장시절, 부산 군수기지사령부를 위문방문했다가 사령관 박정희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고,
그때 친분을 맺은 덕분에 이후 김도준은 승승장구하게 된다.
특히 그가 해오던 양묘업이 박정희의 산림녹화사업과 맞아 떨어지면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그는 '제주도의 대통령'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막강한 부와 명예를 가지게 된다.
김도준에게는 10명의 딸이 있었는데, 그중 이화여대를 나온 김순이를 유독 자랑스럽게 여겨
박정희 대통령 가족이 제주에 휴가 여행을 올때면 또래였던 박 대통령 딸과 순이를 어울려 놀게 했고,
청와대 초청 자리에도 이대생 순이를 데리고 가곤 했었단다.
그 '김순이'가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나이가 무려 19살이나 많은 남자였는지라 양가의 엄청난 반대에 직면하게 되지만
'삶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듯한 그를 잡아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절박함에
많은 것을 가졌지만 학식은 별로 없었던 부친에 대한 반발심까지 더해져 그녀는 그 남자랑 결혼을 결심하게 되고,
결국 청혼을 하고서도 가족 부양의 책임을 자신없어 하던 그 남자에게 '내가 먹여 살리겠다'며 그 남자를 설득한다.
모든 것을 다 가졌던 김도준,
이화여대 국문과를 나와 시인으로 촉망받았던, 가장 애지중지하던 딸이
'내 인생은 나의 것'을 외치며 반란을 이르키자 그는 충격으로 보름이나 앓아 누웠었다고 한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지 않은가.
나중에는 '살림은 차리더라도 제발 결혼만은 하지 말라'고 애원까지 해보지만,
끝내 두 사람은 서울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게 되고,
급기야 남자의 생일 날인 72년 2월 7일, 제주신문에 '저희가 속리산 법주사에서 결혼을 하였습니다'라는 광고를 내고
실제로 그날 법주사에서 성타 스님의 주례로 혼례를 치르게 된다.
이 소설같은 불꽃 순애보의 남자 주인공이 바로 '김종철'이다.
유홍준 선생이 '제주의 신이 그에게 내린 숙명적 과제'라고 표현했고,
역사 공부하는 농민 김종민은 '이 책을 표절하지 않으면 결코 오름을 묘사할 수 없다'고 갈파했던 책,
'오름나그네'를 이 세상에 내놓고는,
20일만에 평소 사랑했던 한라산 선작지왓에 묻혀버린 그 남자가 바로 김순이 시인의 남편이였던 것이다.
오늘은 한대오름을 간다.
'한대'는 깊은 산중의 비탈진 곳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한대오름을 가는 길은 멀다.
'먼길은 같이가라'고 했다. 오늘은 죽마고우가 동행한다.
한대오름은 덩치가 크지만 비고는 36m로 매우 낮다.
김순이 시인이 1993년 남편 생일날이자 결혼기념일 날 국립지리원에서 나온 5천분의 1 제주도 지도 한 세트를
남편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모두 354장으로 이루어진 그 지도는 우리나라에서 나온 지도중 가장 정밀한 지도였다.
그 지도 더미를 받아 안고 김종철은 너무 좋아 울음을 쏟아내면서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고마워, 이 지도가 있으니까, 이제 오름들의 비고를 모두 계산해 낼 수 있어"
제주 오름의 비고들은 그렇게 탄생하게 된다.
솔직히 김순이 시인이 누군지 몰랐었다.
'김종철의 오름나그네'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번에 김종철 선생에 대하여 좀 더 깊숙이 들여다 보면서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인데
알면 알수록 참 대단한 사람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곁에 있었기에 김종철 오름나그네가 탄생할 수 있었으리라.
김종철은 마지막에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오름나그네의 오류와 오타를 걱정했었다고 한다.
그런 남편에게 그녀는 "내가 책임지고 고치겠다"고 약속을 했었다고.
절판된 지 24년이 지나서 서울에 있는 출판사 '다빈치'가
제주 오름과 문화를 지켜달라는 김종철 선생의 유지와 두 분의 아름다운 순애보를 기리고자
'오름나그네' 복간을 추진하게 되고,
2019년 4월 15일,
김순이 시인은 개정판으로 복간한 오름나그네 1,2,3권을 들고서 남편의 유골이 뿌려진 선작지왓 탑궤로 가서
헌정식을 치르며 남편과 했던 약속을 지키게 된다.
"선생님, 오름나그네 개정판을 가져 왔어요. 25년 만이니 너무 오래 걸렸지요?
말씀하신대로 교정이 잘 됐는지 한번 살펴봐주세요"
나는 이번에 서울 방문했을 때 이 책을 꼭 사고 싶어서 '영풍문고'에 들렸으나 책이 없었다.
그 당시 다빈치는 온라인서점 알라딘 펀딩을 통해 1천권 한정판으로 출간을 했었다고 한다.
한대오름은 입구까지 찾아가는 길이 멀고 오르기는 쉬운 오름이다.
한대오름은 1100도로 18임반 입구에서 출발할 수도 있고 아니면 바라메오름 입구에서 갈 수도 있다.
바라메오름 입구에서 출발하면 한대오름 입구까지 대략 3.7km 정도가 된다.
바라메오름 입구에서 700m 정도 들어오면 함박재농장 삼거리가 나오고 이때 좌측으로 들어서서 900m 정도
더 들어가면 다시 삼거리가 나오고 우측으로 들어서서 2km 조금 넘게 오게 되면 이 삼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1100도로에서 출발한 사람들도 이 삼거리로 오게 된다.
가을 단풍철에는 1100도로로 오는 것이 좋다. 단풍이 기가 막히다.
좀 더 편하게 가고 싶으면 바리메 쪽이 좋다. 차를 어디에 주차하는지에 따라 이동거리를 많이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삼거리에서 우측(바리메로 온 경우)으로 들어서면 한대오름이 보인다.
조금 더 들어서면 이렇게 갈래길이 나온다.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없다.
우린 왼쪽으로 들어선다.
조릿대가 많이 보이는 곳을 지나면 다시 갈래길이 나온다. 여기서 우틀해야 한다.
우린 좌틀해서 들어섰다 다시 빡꾸한다.
우틀하면 이런 삼나무길. 계속 걸어가면 나인브릿지 골프장이 나온다고 한다.
비고가 낮아서 오르는 길이 완만하다.
오르다 보면 묘가 나오고,
조금만 더 오르면 드디어 정상이 나타난다.
한대오름은 남북으로 봉우리가 2개 있다.
양쪽에는 서쪽을 향한 묘지가 있어 전망대 구실을 한다.
여기서 서쪽 지역 오름들이 조망된다. 오늘은 미세먼지땜에 조망이 좀 별로다.
북돌아진오름, 괴오름, 폭낭오름, 다래오름, 빈네오름 등이 조망된다.
한대오름 동북쪽에는 노로오름이, 동쪽에는 삼형제오름이, 남쪽에는 돌오름, 서쪽에는 검은들먹오름이 위치하고 있다.
친구에게 사진 한방 부탁하고,
앉아서 김밥에 막걸리 한잔하는 친구도 함 담아보고,
저 친구가 김밥을 사오면 항상 맛있다.
다시 출발한다.
북쪽 봉우리에는 묘가 2개 있다.
한대오름의 자랑, 분화구 습지에 도착했다.
친구는 와이프랑 부지런히 카톡중이다.
저 친구는 오름이나 산에 가면 꼭 풍경 사진을 찍어서 와이프에게 보낸다.
제주 소나이들 저러는 경우 극히 드문데 다정다감한 남편이다. 보기 좋다.
친구랑 같이 오니 사진 찍어줄 사람 있어서 좋다.
탐방로 표식을 한 것같지는 않고...
나무에 저렇게 가혹한 테러를 저지르는 심뽀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한라산 성판악 코스 초입에서 만나는 풍경 비슷했다.
드디어 길이 나온다.
맞은 편에 다시 눈쌀을 찌푸리게 만드는 광경이 나오고...
한적하고 편안한 길이였다. 주변에 두릅나무가 많이 보였다.
조금 더 걸어가니 기막힌 풍경을 보게 된다.
이 나무들 뭐지. 얘들은 연예인 나무들인가. 왜 이렇게 가늘고 길지.
삼나무가 분명한데...삼나무들은 보통 저렇게 몸통이 가늘지가 않는데...
저건 소나무인데...소나무도 저렇게 홀쭉 길쭉할 수 있는가.
이거 도핑테스트라도 해봐야 하나.
그러고 보니 큰노꼬메오름에서 한라산 쪽을 바라보았을 때 주변과 다른 진한 색으로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했던 광경이 바로 이런 나무들 때문 아니였나.
분명 산림녹화사업 시 심은 삼나무는 아닌 듯한데...품종이 다른가.
의문점이 한 둘이 아니였다.
올해 단풍철에 1100도로로 꼭 함 다시 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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