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지리산을 등반한 것은 2017년 11월 4일이였다. 100대명산이란 숙제를 위해서...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왜 젊은 시절에 지리산을 함 가보지 못했을까.
'성중종주'나 '화대종주'까진 아니더라도 천왕봉 정도는 경험해 보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반성을 해보았다.
2017년 11월 3일,
지리산과의 첫 만남을 위해 나는 사천공항에 내렸다.
그 후 계획은 '사천공항-진주시외버스터미널-함양시외버스터미널-백무동시외버스터미널'이였다.
하지만, 진주터미널에 도착한 난 황당한 일을 겪게 된다.
시외버스가 파업중이였던 것, 역사상 처음이로...꼭 내가 지리산가는 날.
어쩌겠는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고,
세상에서 가장 아까운 것이 택시비인 나였지만, 눈물을 머금고 진주터미널에서 백무동까지 택시를 타고 갔었다.
제주에서 지리산을 가려면 어떻게 가는 것이 가장 현명할까.
지리산은 규모면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산으로
전북 남원, 전남 구례, 경남 산청, 하동, 함양 등 3개 도, 1개 시, 4개 군에 걸쳐 있다.
그러므로 비행기편을 광주공항, 대구공항, 김해공항, 이렇게 3곳을 염두에 둘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김해공항이 제일 편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왜? 버스 편수가 많아 스케줄 짜기에 용이하다.
(1) 김해공항에서 경전철을 타고 부산서부터미널로 간다. 10분이면 간다.
(2) 부산서부터미널에서 함양시외버스터미널 : 1시간 50분정도 걸린다.
(3) 함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백무동터미널 : 1시간정도 걸린다.
이 스케줄로 가서, 지리산 산행을 10시간 정도로 끝마칠 수 있다면 지리산 1박2일로 다녀올 수 있다.
부산서부터미널에서 15시 버스를 타고 함양터미널에 16시 50분경에 도착한다.
함양터미널은 이번에 처음 와본다.
함양터미널에서 17시 버스를 타고 백무동터미널에 18시경에 도착한다.
이 버스에는 2-3명 정도 타고 오다가 도중에 다 내리고 나중에는 버스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는다.
육중한 산과 계곡 사이에 나있는 도로를, 약간은 어두컴컴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참 좋더라. 제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였다.
백무동에 내리니 제법 어둠이 깔려 있었다.
여기가 미리 예약해 두었던 숙소, 터미널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여기서 등산로 입구까지는 멀지 않다.
우선 식당으로 가서 키를 받고 저녁을 먹는다. 선택할 수 있는 메뉴는 김치찌게와 비빔밥정도.
김치찌게를 시켰다. 별로였다. 밑반찬도 별로 없었고, 찌게는 기대를 했으나 실망.
낼 등반시 먹을 도시락을 추가로 주문해서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21시 정도되니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이날 아침 집에서 대충 먹고, 점심은 제주공항에서 햄버거로 때웠고, 그리고 저녁은 부실한 김치찌게...
배가 고풀 수 밖에 없었다. 배가 고프니 잠이 안왔다.
자는둥 마는둥 03시 30분에 기상을 했고, 대충 씻고 03시 45분경에 숙소에서 나온다.
나오면서 너무 허기가 져서 편의점에서 사온 사과 2개중 하나를 꺼내 한입만 먹는다.
가로등도 졸고 있는 이 길을 걸어가는데 기분은 상쾌했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동서울에서 23시 59분 버스를 타고 이곳 백무동에 03시 35분경에 내려
지리산 등산을 한다. 한마디로 산에 미친 사람들.
나도 일정을 짜며 그리 해볼까 생각했는데, 조회를 해보니 이미 표가 매진되어 있었다.
백무교을 지나 차단기가 보이는 곳이 바로 탐방지원센타이다.
지나가다 보니 직원 한분이 졸고 있었다.
등산객들이 안 보이는 것을 보니 동서울 팀은 이미 등산로에 들어선 모양이다.
03시 50분, 드디어 오늘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은 저번 설악산 산행보다도 더 빡센 산행이다. 오늘은 대략 20km를 걸어야 한다.
산행시간도 10시간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항상 출발점에 서면 하는 생각, 언제면 다녀오나...오늘은 설악 산행때보다 여러모로 컨디션이 안좋다.
날씨도 추워서 올 하반기 처음 패딩을 입는다. 근데, 너무 얇다.
자아 일단 출발...5.8km 떨어져 있는 장터목대피소를 향한다.
오르다 보니 추운데도 땀이 흘렀다.
땀이 흐르면서 몸도 풀리고...컨디션이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나름 오르막을 잘치고 갔다.
먼저 출발한 동서울 팀을 하나 둘 앞서면서 '참샘'에 도착한다.
이제 패딩을 벗는다. 벗으니 좀 춥긴 하지만 그래도 벗는 편이 좋을 것같았다.
여기가 출발점에서 3km 정도 온 지점, 장터목까진 2.8km 남은 지점이다.
이쯤에서 2명의 젊은 산객을 앞서 나간다.
근데, 조금 더 걸어가니 이젠 내 앞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칠흙같은 어둠 속을 나 혼자서 헤쳐나간다는 생각에 약간 겁이 좀 나더라.
안되겠다싶어 좀 전에 추월한 젊은 산객 2명을 기다렸다가 그들과 함께 걸었다.
자연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게 된다.
둘이는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사회 초년병들처럼 보였다.
그중 한 친구가 '열심히 노력해봐야 크게 돈을 벌 수도 없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인생이 재미가 없어졌는데
그때부터 수도권에 있는 산들을 다니기 시작했고, 산행 경력은 2년정도 되었다'는 얘길한다.
'얼마전부터는 지방에 있는 산들을 다니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태백산을 다녀왔고, 오늘 지리산은 처음이라고...
옆에 있는 친구는 자기가 가자고 해서 따라온 것'이라고 했다.
한 1km 쯤 같이 걸었을까,
그 따라온 친구가 조금씩 쳐지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친구를 부른다. 쥐가 난 모양이였다.
결국, 우리는 거기서 헤어지게 되었다.
06시 10분경, 드디어 1차 목적지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한다.
도착하니 대피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 장터목에서 1.7km 떨어져 있는 천왕봉을 향한다.
초반 10분 동안은 급경사의 오르막을 걷게 된다.
오르면서 다시 바라본 장터목대피소 풍경.
장터목대피소는 지리산 요지에 있어 여기 저기의 탐방객이 집중되는 곳이다.
그래서 눈으로 보다는 먼저 귀로써 대피소에 다다랐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남쪽 산청과 북쪽 함양 사람들이 올라와 물건을 사고 팔았던 장터였는데,
빨치산이 준동하면서 폐쇄되었고 지금은 대피소로 이용되고 있다.
이날 한라산에는 상고대를 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지리산도 매우 추워서 살어름을 볼 수 있었다.
급경사 오르막이 끝나면 길이 약간 순해진다.
이쯤에서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06시 27분에 제석봉에 다다른다.
좀 전에 함께 걸었던 젊은 친구가 자기네는 장터목대피소에서 일출을 볼 것이라며 일출시간은 06시 47분이라고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사실 난 이번 산행에서 일출은 별 관심이 없었는데 '06시 47분' 기억때문에 갑자기 일출에 관심이 갔다.
제석봉 전망대에서 천왕봉쪽을 바라보니 해가 막 떠오르려는 모습이였다.
여기서 천왕봉까지는 1.1km,
아무래도 천왕봉 정상에서의 일출은 힘들다고 생각, 제석봉에서 일출을 감상해보기로 하고 기다린다.
드디어 뜨는구나.
사실, 산에서 일출을 바라본 적은 없다.
예전에 한라산 일출을 보려고 신년산행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정상 부근에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보질 못했었다.
지리산에서 내가 일출을 보게 될 줄이야.
감동의 쓰나미가 사정없이 밀려왔다. 미친 듯이 사진을 찍어 댔지만, 내가 실력이 별로 없어서
나중에 보니 건질 사진은 별로 없더라.
일출의 감동을 뒤로 하고, 자 이제는 천왕봉을 향해 가즈아.
중산리쪽으로 태양의 기운이 흠뻑 들어서고 있었다.
천왕봉 톨게이트와 같은 통천문.
저 좁은 계단을 올라서야 천왕봉으로 갈 수 있다.
저 쇠파이프를 보니 갑자기 다시 손이 시려온다.
제석봉을 지나면서 부터 무지 추웠다. 바람도 많이 불었고.
상의 티는 긴팔이지만 여름 티였고, 초 가을 잠바, 그리고 얇은 패딩...이것이 내가 가지고 간 옷의 전부였다.
이번 지리산 산행은 너무 준비없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먹을 것, 입을 것...모든 면에서.
특히 장갑이 없어서 무지 고생했다.
정상 부근에서는 저 파이프를 잡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정말 잡고 싶은 맘 1도 없었는데 살기 위해서 잡고 올랐다.
이번 산행을 준비하면서 지리산에 대하여 공부를 좀 하였다.
그래서 이 사진에서 제석봉, 연하봉, 촛대봉, 반야봉, 노고단을 찾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제석봉은 2번씩이나 올랐고, 연하봉과 촛대봉은 오늘 처음 오르게 될 것이다.
지리산에 관한한 다음 나의 관심사는 노고단, 반야봉, 바래봉이다.
올 봄 안에는 전부 다녀올 예정이다.
애쓴 손 덕택에 정상 턱밑까지 왔다.
07시 10분, 드디어 제주도 촌놈,
우리 민족의 정기와 설움, 한을 송두리채 품고 있는 지리산...그 최고봉 천왕봉에,
머릿털 나고 두번 째로 우뚝 서본다.
그러나, 그 행색은 참 안습이다. 어디서 빨치산에 쫓기다 왔니.
너무 춥고, 특히 손이 너무 시려서 빨랑 하산한다.
하산하는데, 나보다 더 연배가 높아보이는 한 부부가 유독 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이 아내분에게 조심하라고 막 소리쳤다.
제석봉 정상 밑에 있는 외로운 고사목이 나름 운치가 있는 듯이 보이지만 알고보면 지리산의 아픔을 대변한다.
본래는 구상나무, 가문비나무, 잣나무 등이 빼곡했을 이곳에서 고사목만을 벌채하겠다고 허가를 받은 후
살아있는 나무들을 마구 벌목한 것이 문제가 되자, 현장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모든 나무들에게 불을 지른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이곳이 고사목 군락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봉을 내려오는 길, 너무 좋다.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했는데, 역시나 사람들이 바글바글...
어찌 어찌 한자리를 차지하여 도시락을 꺼내 본다.
어제 밤에 잠이 안와서 잠시 그 생각을 했었다. 과연 도시락 위에 계란이 언저져 있을까...
다행이 계란은 있었다.
옆에서는 삼겹살, 라면 냄새 팡팡 풍기는 가운데, 완전 찬밥에 굳어버린 계란과 김치를 먹고 있는 내 자신이
좀 거시기했지만 뭐 나름 맛있었다.
추위에 일부 얼어버린 생수까지 들이키니 다시 내 몸은 한껏 굳어졌다.
이제 다음 목적지는 세석대피소이다.
지금까지는 지리산 첫만남시 다 걸어봤던 길이였다.
이제부터는 처음 경험하는 길이다. 그래서 그런가 약간 설레였다.
장터목에서 세석까지는 3.4km의 거리이다. 그렇지만 큰 오르막은 없는지라 많이 힘든 구간은 없다.
연하봉을 향하여 분주히 걸어가고 있는데, 한 남성분이 나를 붙잡고 하소연을 한다.
듣고보니 이런 상황...
일행과 장터목대피소엘 왔는데 본인이 화장실을 다녀오니 아무도 없어서 급히 일행을 쫓아간다는 것이
중산리 방향으로 가야할 것을 세석 방향으로 와버린 것이고, 일행은 가다보니 안보여서 전화를 했고
그 통화중에 나를 만난 상황.
이분 나에게 일행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막 토로하는데, 바쁜 길이였지만 안타까운 맘에 말을 조금 들어준다.
'그렇지요, 대장이 거기서 출발전에 인원체크를 함 했으면 좋았죠'라는 말을 곁들이며...
하지만, 속으로는 본인도 주의를 조금 더 기울렸었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터목대피소 화장실을 나오면 바로 '중산리' 쪽을 안내하는 표시판이 있다. 내 눈에는 확 들어왔었다.
물론 못 볼 수도 있다. 그럼 자연히 세석 방향으로 걸어가게 되는데,
그렇다하더라도 조금 걸어가다보면 이쪽은 중산리 방향이 아니라는 안내판이 다시 나온다.
결국, 이분은 이 두 안내판을 다 보지 못했다는 것인데...한마디로 아무 생각없었다는 얘기.
근데, 이분 갑자기 나를 따라 가겠다는 얘길한다.
반대방향이라 안된다고 하니 백무동 가서 택시라도 타서 중산리로 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어리석은 생각이 분명했다.
장터목에서 그리 멀리 온 것이 아니니 다시 장터목으로 빽해서 중산리로 가시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설득한다.
알았다고 대답하면서 이분 기왕지사 이렇게 된거 사진이나 한장 찍어달라고 청한다.
'그럽시다. 대신 나도 한장 찍어주소'
가다가 뒤를 보면 천왕봉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제주올레 10코스를 역올레로 걷는 것이 좋은 것처럼,
이 길은 세석에서 장터목 방향으로 걷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 계획을 세우면서도 세석에서 장터목으로 향할까도 생각을 했었는데
그럼 한신계곡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같아서 맘을 바꿨다.
드디어 '연하선경'에 들어섰다.
사실, 이번 산행에 포커스는 바로 연하선경이였다.
안개와 구름이 어우러져 신선이 노니는 비경이라고 해서 연하선경이라고 했고,
지리산 시인 이원규님은 자살할 거 같으면 오라고 했던 곳이 바로 연하선경이다.
지리산 주능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저 길을 너무나 걷고 싶었고, 사진에 담고 싶었다.
2017년 처음 지리산 올 적에는 주 관심사가 천왕봉 인증이였다.
그때는 아내랑 왔었기에 코스를 장거리로 짤 수가 없었던지라 연하선경에 올 수가 없었다.
이거슨 반대편 조망, 즉 세석쪽에서 장터목쪽을 바라보는 조망이다.
이 조망에서는 천왕봉이 고개를 내민다.
대체로 이 조망이 더 아름답고들 한다.
짝궁댕이 반야봉를 땡겨본다. 그 옆에는 노고단.
조금만 기다려.
연하봉, 제석봉, 천왕봉이 모두 조망되고 있다.
촛대봉이 그리 멀지 않았구나.
촛대봉에 다다른다.
촛대봉은 지리산 주능선의 최고 전망대이다.
동쪽으로는 제석봉, 천왕봉이, 서쪽으로는 토끼봉, 반야봉, 서북능선 등이 조망된다.
천왕봉에서 찍은 사진도 구린데,
촛대봉에서 꼭 사진을 한장 찍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내 뒤에서 한 산객이 올라와서 사진 한장을 부탁했다.
이제 좀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온 것같네.
천왕봉은 촛대봉에서 바라볼 때가 가장 웅장하다고 하던데,
과연 촛대봉에서 바라본 천왕봉이 멋지구나.
왼쪽은 연하봉과 제석봉을, 오른쪽은 써리봉을 거느린채 천하를 호령하는 모습이다.
촛대봉의 모습.
촛대봉에서 바라본 세석평전의 모습.
세석평전은 한국전쟁과 빨치산 전투때 격전지가 되고,
90년대 중반까지는 과도한 야영과 철쭉제 등으로 황폐화 되었던 곳을 복원하여 본래의 생태계와 경관을
회복하여 가는 중이다.
세석평전은 덕유평전과 함께 1,500m 이상의 고지대에 펼쳐진 아름답고 넉넉한 평원으로,
흡사 윗세족은오름에서 바라보는 선작지왓과 비슷한 풍경이다.
이제 촛대봉을 내려와 세석대피소를 향한다.
세석대피소는 현재 한창 공사중이다.
뒤에 있는 봉우리는 영신봉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세석대피소 옆에서 백무동까지는 6.5km의 거리이다.
하산길 6.5km중 초반 1km 조금 넘는 길은 급경사의 너덜길로 주의를 요하는 길이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무릅 걱정도 해야되겠지만, 발을 잘못 내디디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여기가 무영폭포인 듯.
이쯤부터는 길이 좀 순해진다.
이쯤에서 배낭속에 아껴두었던 남은 사과 1개를 꺼내든다.
나는 사과를 좋아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사과를 먹는 일일 정도다.
산행시 배낭에 사과가 있으면 든든하다.
특히 가을철 이맘때 편의점에 파는 세척사과를 무척 사랑한다.
전날 부산서부터미널 편의점에 가보니 세척사과가 2개 남아 있어서 기쁜 맘으로 사서 배낭에 넣었다.
오늘 새벽에 기상해서 사과를 꺼냈는데 사과가 너무 이뻤다. 양귀비의 레드페이스도 이보다 못할 정도로...
그 사과를 한입 먹었기에 컨디션 난조속에서도 천왕봉에 그리 빨리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사과는 첫 번째 사과보다는 덜 이뻤다. 하지만, 넘 맛있었다.
난 사과의 생명은 아삭함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너무 아삭해서 꿀맛이였다.
갑자기 에너지가 급상승해 하마터면 천왕봉으로 다시 갈 뻔했다.
요즘 시장에서 사먹는 사과는 맛이 별로던데 맛있는 사과는 다 편의점으로 가는가 보다.
나의 100대명산 일등공신중 하나는 바로 편의점 세척사과이다.
내가 100대명산 완등을 위해 육지산을 다니면서 가장 놀랐던 것이 바로 산이 품고 있는 계곡들이였다.
계곡을 따라서 힘차게 내려가는 물줄기에 항상 시선을 빼앗기곤 했었다.
물은 또 어찌 그리 깨끗한지.
그렇지만 항상 시간에 쫓기다보니 저 산객처럼 계곡에서 느근한 시간을 가져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편의점 세척사과만큼이나 산이 품고 있는 계곡물을 사랑한다.
나의 고향 한라산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라 더욱 동경했을 것이다.
한라산에 탐라계곡과 y계곡이 있는 것처럼
지리산에는 칠선계곡과 한신계곡이 있다.
오늘 나는 그중 한신계곡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지리산 북부의 깊고 넓은 한신계곡은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에서 세석고원까지의 험준하면서도 수려한 계곡미가
일품이라고 한다.
계곡미의 극치인 폭포를 수없이 빚어내며 백무동에서 세석까지 10km의 여정을 자랑하는 한신계곡은
영롱한 구슬이 구르듯 맑고 고운 물줄기가 사철 변함없이 이어지는 폭포수의 계곡이다.
오층폭포의 모습.
이날 나는 핸드폰이 고장난 줄 알았다. 왜? 사진을 찍는데 소리가 나질 않아서...
근데 보니 잘 찍히고 있더라. 힘찬 물소리때문에 찰깍 소리가 도통 들리질 않았다.
다만, 아직 단풍이 물들지 않음이 많이 아쉬웠다.
참으로 이쁘도다.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함직 하다.
아마도 한신계곡의 주인공이 아닐까.
바로 가내소폭포이다.
이런 멋진 폭포에는 스토리텔링이 없을 수가 없다.
신라시대 한 스님이 이곳에서 도를 닦다가 자기 도력을 시험하고자 실타기 도전을 하였다.
계곡 사이에 실을 매달고 막 실 건너길 끝내려는 순간, 지리산 여신의 유혹으로 그만 계곡물에 빠지고 말았다.
비록 여신의 방해가 있었다고는 하나, 도력의 한계를 깨닫고 크게 낙심한 스님은 그 길로 수행을 포기하고
"나는 가네"하면서 떠나고 말았다.
이후 "가네'하며 갔다고 '가내소'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모습은 방태산에서 보았던 풍경과 비슷하다.
방태산도 계곡이 참 이뻤는데...
이날 한신계곡을 내려오면서 그 어느 곳에서 보다도 더 많이 사진을 찍었다.
이건 뭐 자연의 위대함이라고 표현할 수 밖엔 뭐라 할말이 없네.
이제 남은 거리는 1.7km.
지금까지 고생한 것과 비교하면 거이 산책로 수준.
12시 10분,
드디어 장시간의 산행을 끝마친다.
너무나 행복하고 가슴벅찬 산행이였다. 역시 저지르길 잘했다. 지리산과 조금 더 친해진 느낌이다.
10시간을 예상했지만, 8시간 20분으로 아주 선전했다.
좌측으로 가서 우측으로 나왔다.
표시판이 참 멋지네.
오늘도 무탈산행에 감사하는 맘을 가진다.
백무동터미널에 도착하니 12시 30분에 출발하는 함양행 버스가 바로 있었다.
산행시간 단축에 버스편도 착착...결국 김해공항에 16시 조금 넘어서 도착하게 된다.
비행기 시간은 21시 05분인데...앞당겨서 가보려 했지만 8만원이상의 추가요금이 요구되는지라 포기.
'공멍'이라 하고 싶다. 공항에서 멍때리는 거. 100대명산하면서 많이 해봤다.
4시간 이상을 공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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