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행일시 : 2022년 10월 31일
* 산행지 : 상주/괴산 청화산 (블랙야크 선정 100대명산)
* 누구랑 : 혼자
* 산행코스 : 늘재 - 청화산 정상 - 원적사 입구 - 우복동천
* 산행시간 : 3시간 40분 (08:56 - 12:36)
합천 가야산 맞은 편에 어제 산행했던 남산제일봉이 있는 것처럼
속리산 바로 앞에는 청화산이 자리잡고 있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산의 높고 큼은 비록 속리산에 미치지 못하나 수석의 기이함은 속리산보다 훌륭하다'고 말하며
청화산을 극찬했었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의 호를 '청화산인'이라 칭하고 청화산에 기거하기까지 했었다고 한다.
청화산은 경북 상주시 화북면, 문경시 농암면과 충북 괴산군 청천면 등 3개 시군의 접경에
우뚝 솟아 있는 산으로 높이 984m이다.
청화산에는 산죽군락 지역과 소나무가 많아 겨울철에도 푸르게 보이는 산으로
아마도 청화산의 유래가 여기서 나왔는지도 모른다.
청화산은 눌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여러 모로 좋으며,
백두대간의 고개지만 그리 높지 않고 ,
곳곳에 낙낙장송과 보기 좋은 큰 암봉들이 있어서 쉬며 조망하기 좋은 산이다.

'늘재-청화산-늘재'....이런 코스로 청화산을 다녀오기에는 넘 싱겁다.
그래서 조항산까지 연계해서 다녀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야 청화산의 가치가 더욱 돋보인다.
나도 조항산까지 다녀오려고 머리를 쥐어짜보았지만 도통 답이 나오질 않았다.
결국,
상주발 07시 40분 버스를 타서 늘재로 가고, 다시 늘재로 하산한 다음 입석발 12시 40분 버스를
타고 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동안 100대명산을 다니면서 애용한 무수한 시내버스는
나에게는 너무나 고마운 존재였고, 명산 산행의 일등공신이였다.
시내버스에 얽힌 사연들이 참 많다.
가려는 산이 종점이면 아름다운 시골길 풍경을 만끽하며 편안하게 갈 수 있지만,
중간 지점에 산이 위치할라 치면 나는 극도로 예민해진다.
시골버스는 대개가 화면 지원이 없고 안내방송 음질도 매우 떨어질뿐 아니라
'다음 정류장은 000입니다'는 멘트도 없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퐁짝을 틀고 운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여
안내방송을 듣고 원하는 정류장에 정확하게 하차하는 일이 큰 난제이기 때문이다.
암튼, 저 버스타고 가는데 완전 좌불안석이였다.
다행히 긴장한 나의 모습을 케치한 한 고마운 여성분의 하혜와 같은 배려로
무사히 정류장에 내릴 수 있었다.

내려서 속리산을 바라보니 너무 좋았다.
조금 걸어 올라가니...


너무나 보고 싶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좌측으로 뚜렷하게 난 길에 들어서며 청화산 산행을 시작한다.

코로나가 풀리다보니 저가 비행기표를 구하기가 예전보다 어려워졌다.
사실 이번에는 강원도로 떠나보려 했지만 만족스런 표를 구할 수가 없었고,
유일하게 '대구공항+일월 일정' 스케줄이 나오더라.

그래서 토요일에 간만에 라이딩을 할 수 있었는데
엄청난 바람으로 환상자전거길이 환장자전거길이 되어 버려 체력소모가 매우 컸고,
어제도 남산제일봉 산행 등등으로 3만보 이상을 걸은지라
오늘은 초반부터 허벅지가 묵직했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전화도 많이 왔다.


순하던 길이 갑자기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청화산을 오르는 산객들을 의아하게 만드는 시설물, 비석에 '정국기원단'이라고 씌여있다.
도대체 누가 설치한 것일까.
기사에 따르면 '청화산농원 회장이 나라가 태평하기를 기원해서 세운 것'이란다.
누군가가 '정국'은 일본 야스쿠니신사를 뜻해서 우리나라 국민정서에 맞질 않아 상주시에 철거를 요청했는데
상주시는 '개인이 설치한 시설물을 상주시에서 함부로 철거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암튼, 이 지점에서 조망이 트인다.

청화산은 속리산 전망대이다.
속리산을 당겨 보았다.
좌측 뾰족한 부분이 문장대이고, 우측 뽀족한 봉우리는 관음봉이다.

다시 험한 등로가 이어지고....

정상은 아직은 제법 멀리 느껴진다.
좌측으로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바로 정상이다.

앞에 보이는 산은 백악산(856m)이다.

속리산 관음봉 묘봉 라인도 함 당겨보고..





청화산, 정상까지 그리 멀지는 않지만 은근 거칠다.

정상이 가까워지고 있다.
사무실에서 전화가 온다. 그러고보니 오늘 월급날이네.
이거 하라 저거 하라 막 시키는데 되지는 않고 환장하네...

쇳등바위라고 하던데...
저길 오르면서도 난 계속 전화질이다.

이제 정상은 코앞이다.

저기 보이는 산은 무슨 산인고?

시루봉이 보이고 있다.
청화산은 시루봉과의 연계산행도 가능하다.
시루봉 뒤로 연엽산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정상 근처에 있는 헬기장.

청화산 정상은 좀 볼품이 없다.
나무들이 많아서 조망도 거이 없다.

정상석도 매우 작다.
그래도 글씨체는 참 멋있다.

월요일날 청화산 정상에 사람이 있을리가 없었다.
오다가 하산하는 사람 딱 1명 보았다.
늘재에서 정상까지 오는데 1시간 30정도 걸렸다.
전화 통화을 많이 하느라 시간을 많이 빼았겼다.
현재 시간은 10시 25분.
늘재 부근에서 상주로 가는 버스는 12시 50분에 있다.
시간이 그야말로 널널했다.
이때만 해도 그 버스를 놓질 것이라고는 1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저 미소는 억지 미소고....현재 내 맘은 영 불편했다.
조항산이 자꾸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부터 조항산까지가 진짜 볼거리가 많음을 알고 있기에....
하지만 감행하는 순간 비행기 놓치는 것은 명약관화기에 꾹 참았다.

다시 시루봉과 연엽산을 담아보고...
그래 시간도 널널하니 조금만 더 가보자...혹 가까운 곳에 조망처가 있을지도 모르니...


와, 엄청난 조망들이 숨어 있구나.

이 지점에서 밑으로 가면 조항산으로 가는 것이고, 직진하면 시루봉을 향하는 것이다.
여기서 눈물을 머금고 돌아선다.
그래 직진만 할 수는 없다. 돌아설 땐 돌아설 줄도 알아야지....


이제 내려선다.
시간이 넉넉하면 맘이 편안해진다.
어제 시간이 빡빡하여 얼마나 맘을 조렸던가.
현재는 완전 룰루랄라다.
근데....사단은 이럴 때 일어 난다.
하산을 하는데 느껴지는 이 낮설음은 뭐지...
전화 받으며 정신없이 올라오긴 했지만 아까랑 분명 다른 풍경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때서야 올라올 때와는 다른 등로임을 알아차린다.

이 사진은 다른 님 블로그에서 찍은 사진이다.
좌측은 원적사로 향하는 길이고, 우측이 늘재로 향하는 길이다.
사진으로 봐도 무심결에 좌측으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지 않은가.
이 사진을 보니 기억이 나더라.
내 눈에는 저 늘재 표시판만 보였고, 속으로 바람때문에 표시판이 뒤집혔네 그러면서 걸어갔다는 사실을...

아래를 보니 원적사가 보여 함 당겨 보았다.
뭐...그렇지만 난 당황하지 않았다. 왜? 난 시간이 널널하니까.
이곳으로 하산하더라고 입석에서 12시 4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만날 것이니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멋진 소나무도 보고,

새로운 풍경도 볼 수 있으니 뭐 나쁘지 않네.

그렇지만 원적사 하산길은 매우 가파르고 미끄러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선시대 백성들은 이런 길을 걷지 않았을까 하는....
좋게 말하면 자연의 길이고, 나쁘게 말하면 방치한 길.
그동안의 산행 짬밥으로 무사히 내려오긴 했다.

드디어 표시판이 나타나고,
현재 시간 11시 59분....
여기서 조금만 내려가면 버스정류장이 나올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시간 널널하니 사진 좀 찍고...




내려서는 길이 너무 좋았다.
가을 가을한....그리고 완전 한적한....
오롯이 혼자 가을 속에 풍덩빠진 그런 느낌이였다. 너무 좋다, 너무 좋다를 외치며...

히죽거리며 형형색색 가을빛으로 물든 봉우리를 찍고 있었는데....
근데, 이때부터 왠지모를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왜 속리산은 안보이지....
제법 걸어내려 왔건만 버스정류장은 어찌 나오질 않는가 말이야.
조금 더 걸어가니 앉아서 나물 다듬는 할머니가 보여서
'여기 버스정류장이 어디에 있나요?' 물었더니 '어휴, 여기서 30분은 더 가야 나오는데....'
시계를 보니 현재 시간 12시 25분...
와....X됐다.

아마도 오늘 가장 부지런히 걷지 않았을까.
드디어 버스가 다님직한 도로가 나왔다.
현재 시간 12시 37분, 할머니가 말한 30분은 할머니 기준이였다.
내가 생각하는 버스가 이 도로만 통과한다면 충분히 탈 수 있는 시간이였다.
근데, 중요한 사실은 버스정류장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

마을에 사람이 한명도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사진에 보이는 저 식당에 들어가서 주인장에게 물었다.
'여기 버스정류장이 어디에 있습니까?'
주인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상주에서 오는 버스가 이 다리에서 턴해서 입석으로 가고
그 버스가 입석에서 다시 상주로 간다는 것이다.
그럼 몇시에? "13시 넘어서...근데 확실하지 않아요."
대답이 썩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버스가 있다는 사실에 일단은 안도한다.
조금 있으려니 한 어르신이 나에게 다가 오시며 "2시 넘어서야 올 것이다"는 얘기를 한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식당 주인장이 밖으로 나왔다가 애처롭게 버스를 기다리는 나를 보더니
"아직도 못 가셨어요" 그러면서 폰을 검색하더니 "2시 20분경에 버스가 온다"는 얘길 해주신다.
지금까지 50분을 기다렸고, 다시 50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
저기 보이는 나의 배낭이 처연했다. 딱 내 꼬라지였다.

갑자기 이 정류장은 어딘가요? 말하자면 길다.
요약하자면 엉뚱한 버스를 타고 화북면 정류장으로 왔다.
이곳에서 15시 05분에 상주행 버스가 있다는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나의 마지막 동아줄이였다.
현재 시간 14시 36분...
근데, 맞은 편을 바라보니 이쁜 단풍나무가 보였다.


이쁜 단풍을 보자 급 기분이 좋아졌고, 사진을 얼마나 많이 찍었느지 모른다.
15시 3분쯤에 드뎌 상주행 버스가 왔다.
청화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의 감격, 그 3배쯤 되는 감격이 밀려왔다.
상주터미널 도착, 시외버스 타고 동대구역 도착, 다시 택시타고 대구공항 도착.
19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무사히 제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기나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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